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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 도시이야기

김형윤의 <마산야화> - 117. 이등의 밤중 도독술, 118. 영친왕의 정략결혼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6. 10. 10.

 

117. 이등(伊藤)의 밤중 도독 술

 

 

융희 황제가 남한 순행 때 수행해 왔던 이등박문은 숙소인 삼증구미길(三增久米吉) 이사관 관저 근처는 경계가 사뭇 삼엄했다.

 

삼증 이사관 부인도 행여나 해서 밤중에 눈을 붙이지 못하고 있는데 심상치 않은 소리가 들려왔다.

 

그곳으로 조심조심 숨을 죽여 살펴보았더니 다름 아닌 이등이 찬장을 열고 비치되어 있는 술병을 흔들어 보고 빙그레 웃으면서 도오꼬(銅壺, 동호)에다 데운 뒤 쭈그리고 않아서 두 홉이나 마시고 있지 않은가?

 

산증 부인은 비로소 이등이 호주(好酒)하는 줄을 알고 마음을 놓았다.

 

이 말을 부군에게 아니하고 1, 2년이 지나 남편이 마산부에서 최임하고 동경으로떠날 때 비로소 발설한 것인데 남에게는 말하지 말라고 당부까지 한 대판매일신문 주재기자로부터 새어나온 것이다.

 

 

<마산이사청 뒤 언덕 위에 이사관사가 보인다. 순종과 이토의 숙소로 사용된 곳이다>

 

 

 

118. 영친왕의 정략결혼

 

 

1920(대정 9) 428일 이왕세자 영친(英親)과 일본 황족 이본궁(梨本宮) 1녀 방자(方子)와의 정략결혼에 크게 반발한 조선인의 수가 불가승수(不可勝數)였으나 이 가운데서도 이것을 방해하고자 실력으로 행동한 사람은 당시 동경 시내 모 우편국 고원(雇員)이던 서상한(고학생)으로 폭탄을 품고 식에 참례(參禮),

 

일본 황족 및 현신(顯臣)들을 모조리 폭살하려고 했던 정보를 입수한 경시청 특고과(特高課)에서는 이를 초중대시(超重大視)하여 첨예 형사 수십 명으로 결사대를 편성, 서상한의 우거지를 포위 검거하여 공범 여부를 조사하였으나 단독범임이 입증되어 실현 4년을 선고하였던 것이다.

 

일본 정부는 치안 경찰법 17조 위반자 조선총독부 제령 제7호 위반자(독립운동자 포함) 등 기결인들에게 형기 반감의 사면령을 공포하였으나,

 

몸은 영어(囹圄)의 신세라 할지라도 불구대천지구(不俱戴天之仇)로부터 은전을 입는다는 것은 독립운동자의 정신적 모욕이라하여 구은(救恩) 출옥을 거부한 사람도 있었으나, 결국은 공포한대로 실시가 되었던 것이며 당시 마산의 청년 관계자들은 다음과 같다.

 

19204

산제당 태극기 게양 사건 연루자

 

전재완(일명 만석), 강종완, 조상록, 박병수, 김응윤, 김용조 등 6명은 실형 1년 선고로 마산 감옥에서 복역하고 신경식 1명은 미성년자라 하여 개성 소년감옥으로 이감 복역하였다.

 

그리고 이 7명은 사면령으로 출옥한지 2년 후인 1922년에는 청산리 일군 섬멸 전과문을 입수, 이것을 구산면사무소에서 수백 매를 등사하여 마산부대 요소마다에 전달하였다.

 

김응윤, 강종완, 박병수, 전재완, 이정문 등은 마산 예심을 거쳐 부산법원에서 각 1년이 선고되어 부산 감옥에서 만기 출옥하였던 것이다.<<<

 

<영친(英親)왕과 일본 황족 이방자(方子) 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