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도시이야기

『진해』(1912) - 4. 이상적인 시가지

운무허정도 2024. 12. 16. 00:00

4. 이상적인 시가지

 

진해 시가지는 군항경영이란 제1차 계획에 따른 것이며, 해군당국이 꽤 고심한 끝에 설계 한 것임은 명백하다.

시가지 대하를 제3기로 한 것도 결국 완전한 시가지를 조성한다는 방침 아래 나온 것에 틀림없을 것이다.

이것은 제1기 대하지 36,000여 평에 집들이 나란히 세워지게 된 후, 이 정도이면 수급이 일치해 조금도 불편을 느끼지 않을뿐더러 나아가 이 정도로도 부족하다고 사료되었을 때에 제2기 대하를 실시하게 되며, 제2기 대하가 제1기와 마찬가지 상태에 이르렀을 때에 제3기 대하를 실시할 것이라는 순서를 염두에 두고 있었던 것이다.

때문에 제2기까지는 기술한 바와 같이 실시되었는데 다만 제3기 대하가 제2기의 완성 이전에 발표된 것은 학교조합 유지를 위해 연구 결과가 예정보다 빨리 나온 탓이다.

인구 증가로 인해 제3기 대하지 차지인의 경영 착수기간은 매우 느려지고 있다.

이 시가지는 실로 이상적인 시가라 함에 망설임이 없다.

모든 방면에서 여유 있는 설계를 하고 있는 바, 재등만을 올라가 똑바로 가면 귤통(橘通, 다치바나도오리)이며, 정차장 너머에 암도통(巖島通, 이와지마도오리, 진해역 북쪽의 현 여좌동에 구상한 도로명 중 하나), 이 두 길은 도로 폭이 20간(한간 1.8m)이다.

행암만에 상륙해 똑바로 가면 일출통(日の出通, 히노데도오리), 대화통(大和通, 야마토도오리)이 나오며 이 두 길도 역시 도로 폭은 20간이며, 비봉에서 올라 수뢰단(水雷團), 경리부(經理部), 진수부(鎭守府) 부지, 갑호관사(甲號官舍) 앞을 지나 신시가지에 나가는 길 폭도 20간(길이를 나타내는 단위로 1간(間)은 여섯 자로 약 1.8m이며, 20간은 약 36m를 가리킴)인 앵전통(櫻田通, 사쿠라다도오리)이다.

현동부두(현 해군진해기지사령부가 위치하고 있는 부대 내 현동만의 부두를 가리키는 말)를 올라가 우편소 앞에 나오는 길은 15간에서 10간 폭이다.

동네 안에 있는 길이 이렇게 넓다보니 아무리 차나 마차 왕복이 잦아 사람들 왕래가 많아도 결코 방해가 될 소지가 없다.

20간 도로에는 반드시 차마도(車馬道)와 인도(人道)가 생기게 될 것이며, 이는 다른 도시와 같이 중앙부분이 차마도, 양측이 인도가 될 것임에 틀림없다.

이 차마도 중앙에 노면전차(路面電車, 도로의 일부에 설치한 레일 위를 운행하는 전차를 말함)가 수시로 달리게 됨도 그리 멀지 않으리라고 본다.

시가지는 1등, 2등, 3등이란 3가지로 나누며 1등 도로변에 있는 곳을 1등지, 2등 도로변에 있는 곳올 2등, 3등 도로변에 있는 곳을 3등지로 치고 있다.

그리고 가옥은 모두 도로변에 있는 것은 다 기와지붕으로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바깥에서 보기에는 아연(함석)지붕이란 한 채도 없을뿐더러 1등 도로에 면한 1등지는 모두 2층 건물로 짓기로 되어 있는 만큼 참 근사한 것이다.

그래도 영세민들이 사는 가옥에는 함석이 허용되어 있다.

골목집에 어려운 조건을 붙이면 자연히 월세도 비싸지니 길거리에서 보이지 않는 곳은 지붕이 타지 않을 정도의 소재면 된다고 했기 때문이다.

이 정도 완전한 시가지 모양을 갖춘 도시는 다른 곳에는 찾기 힘들 것이라 생각한다.

자연이 갖춘 미관은 사람 손으로 지어진 미관과 일치하도록 펼쳐지는데, 유명곡(有明谷, 아리아케다니)에서 흘러나오는 정시천(征矢川, 소야가와)은 시가지 중앙을 관통해 재등만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요소마다 다리가 걸려 있어서 왕복은 자유롭다. 또한 남십(南辻, 미나미츠지), 중심(中辻, 나카츠지), 북십(北辻, 기타츠지)이란 세 개의 폭넓은 도로(広小路)가 있어서 시가지 모양새는 잘 갖추어져 있다.

즉 중십(中辻, 나카츠지)에는 유명한 큰 팽나무가 있어 미관을 돋우고 있다.

 

명치 45년(1912) 4월 3일의 진무천황제(神武天皇祭, 일본의 『일본서기」와 「고사기』에서 전하는 초대 천황(일왕)으로 진무천황제는 진무천황이 죽은 날을 기념하는 날) 당일의 기념식수 때에 정시천(征矢川) 천변, 귤통(橘通, 다치바나도오리)이란 두 개의 긴 가로에 오동나무, 소나무, 포플라 등이 심어졌다.

전도다망한 진해 시가지의 미관은 소생이 말하지 않아도 이 기념수가 성장해 무성해지면 영원히 그 미관을 도와 옛적 역사를 말하게 되리라.

하여튼 이상적인 시가지인지 아닌지 한 번 현지에 발을 디뎌 놓으면 바로 알 수가 있을 것이다.<<<

 

이 글은 2022년 창원시정연구원이 1910년대와 20년대 진해의 모습을 담은 세 권의 책을 번역하여 하나로 묶어 낸 지역사발굴연구 교양총서 3권 『근대 문헌 속 진해』 중 『진해』 부분이다. 1912년 출간되었으며 저자는 스기야마 만타(杉山萬太)이다. 본 포스팅은 비영리를 전제로 창원시정연구원의 양해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