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마산(마산포)의 도로변화>
먼저 1945년 원마산 상황과 1930년 상황을 비교해 보겠습니다.
위의 두 그림에서 보다시피 1930년부터 1945년까지에 원마산에는 큰 변화가 있었습니다.
변화의 내용을 정리해보겠습니다. 정리한 번호는 위 1945년 그림에 표기되어있는 번호와 일치합니다.
① 1935년에 지금의 신포동 일대 매립으로 원마산과 신마산이 지형적으로 하나의 도시가 되었습니다.
② 같은 해 기선권형망수협지소와 그 인근 건어물 시장 주변 매립으로 동성동과 오동동의 경계까지의 해안이 직선으로 변했습니다.
③ 1937년에는 수성동, 즉 시민외과 앞 도로가 부림시장과 이어져 신포동 매립지와 연결되었습니다.
④ 같은 해 현 오동동 네거리에서 남쪽으로 내려오는 도로가 개통되었습니다.
⑤ 같은 해 ④의 도로가 새로 매립된 지역의 도로망과 연결되는 도로가 개통되어 오동동에서 해안으로 바로 연결될 수 있는 도로가 되었습니다.
⑥ 1935년에는 1913년에 생긴 부림시장 쪽의 직선도로에 서쪽으로 들어가는 도로가 개통되었고 오동동 파출소에서 동쪽으로 오동교로 향하는 길도 같은 해 개설되었습니다.
⑦ 1937년 추산동 정법사에서 문신미술관으로 오르는 길이 확장되었습니다.
⑧ 1939년에는 1923년 개통된 삼성생명에서 대신증권으로 내려오는 남북간의 10m 도로가 20m로 다시 넓혀졌습니다. 이 도로 확장공사는 도시적 필요에 의해 계획도로가 생긴 후 그 폭이 좁아 다시 넓히는 마산 최초의 확장공사였습니다. 이를 통해서도 이 시기 원마산의 도시규모가 급격히 변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⑨ 1942년에는 원마산 매축지 동쪽 해변의 매축공사가 준공되었습니다.
⑩ 1943년 현 프라자 일번가 건물에서 해안 쪽으로 이어지는 도로가 개설되어 1940년부터 1942년까지 죽본조(竹本組)가 매립한 토지와 연결되었습니다.
이상에서 보다시피 1945년 기준으로 완성된 원마산의 도로는 1970년경에 개설한 합포로 외에 현재의 도로 구조 그대로입니다. 일제강점기 동안 원마산의 도시 골격이 6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대로 사용되어왔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그런가하면 매립을 하면서 생겨난 신설도로로 인해 도로율은 더욱 높아졌습니다.
다음 그림은 강점제1시기, 2시기, 3시, 각 시기별 원마산의 도로망 확산 범위를 그려본 그림입니다.
한편, 1945년 당시 원마산의 도로율은 26.18%에 달했습니다. 물론 이 글에서 대상지역으로 설정한 범역은 일제강점기 말기에 확산된 원마산 전 지역을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므로 원마산 전 지역 평균율이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만 1945년 마산포의 도로율(26.18%)은 1910년의 14.57%, 1920년의 21.42%, 1930년의 23.24%에 비해 급격히 증가한 면적입니다.
1910년 당시 원마산에 자연발생도로만 있었을 때의 도로율이 14.57%였던 것을 감안해 볼 때 원마산 지역이 매립으로 확대되면서 과거보다 폭이 상대적으로 넓은 도로로 인해 증가한 도로율은 실로 엄청난 것이었습니다.
원마산의 도로 개설은 20년대에 비해 많지 않았으나 외곽으로는 그 영역이 더욱 넓어졌으며, 특히 이미 개설된 도로의 폭을 확장하는 등 이 시기 원마산의 범역이 매우 넓게 확산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위 그림에서 나타내고 있는 지역의 현재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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