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기야마 만타(杉山萬太)16 『진해』(1912) - 22. 직업별 22. 직업별 진해의 거주민 호구 수는 시시각각으로 변동하고 있으므로 그 실제 숫자를 알아내기는 극히 곤란할 것이다. 6월 상순 진해경찰서가 조사한 직업별 호구수란 것이 있다. 정확한 것으로 믿기 때문에 아래에 수록하기로 했다. 이 통계에 의하면 1,782호 6,935명이란 숫자를 보이고 있다. 이는 단순히 신시가지뿐만 아니라 비봉, 현동, 경화동, 덕산 등 관내 일반을 포함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토지에 소장은 면치 못할 노릇인 만큼 신개지(新開地)는 더더욱 그렇다. 이 통계가 나왔을 때는 공사 종말기라서 가까운 시일 내에 번성기에 접어드는 시기였기 때문에 조금 감퇴 기미를 보이고 있었을 때이다. 그러기 때문에 이 숫자 따라 기주(寄住, 임시로 남의 집에 몸을 의지하고 지냄)한 자나 장래 숫자를 예상할 .. 2025. 3. 31. 『진해』(1912) - 20. 사업(실업계), 21. 호구(戶口) 20. 사업(실업계) 진해의 실업계는 그 전도가 더욱 다망(多望)하다. 현재 착수되어 있는 사업이 성운(成運)을 향해 가고, 장래에 기획되어 있는 사업이 극히 유리한 입각점을 점하게 됨은 지리가 증명하고 있다. 사업자체가 발전하느냐 못하느냐는 경영 기량에 달려 있겠지만, 그 많은 경우에 지리가 좋으냐 나쁘냐란 점에도 관계가 있는 법이다. 당지는 지리에 있어서 조선에서 으뜸갈 지위에 있기에 장래 각종 사업이 일어나 반드시 성운을 향함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현재 일고 있는 사업에 대해서는 굳이 여기서 얘기하지는 않겠으나 장래 사업으로서 어떤 것이 있는가 하면 너무 많아서 일일이 적어놓을 수가 없는 정도이다. 가고시마(鹿児島) 출신인 하라다 요시타로(原田芳太郎) 씨가 발견한 부근 세 곳의 철령광천(鐵靈鑛泉).. 2025. 3. 24. 『진해』(1912) - 19. 건설공사 19. 건설공사 진해군항은 10년이란 기간을 제1기 계획으로 해 명치 43년(1910)부터 건설공사를 개시해 착실하게 진행하고 있다. 현재 해군 임시건축지부에서 착수중인 공사 대요(大要)는 아래와 같다.1. 경리부 건축공사(준공)2. 수뢰단 건축공사(준공)3. 관사 건축공사4. 계선수역(繫船堀)개폐(締切)준비공사5. 항무부 부지 매립공사6. 수뢰단 방호공사7. 청룡천(淸龍川) 장석(張石)공사8. 진수부(鎭守府)청사 개관공사(준공)9. 정시천(征矢川, 소야가와) 하천공사10. 재등만 부두(棧橋)공사(준공)11. 마천(馬川) 수도공사12. 행암만 부두공사13. 도로개수공사14. 창고 기타 건축공사15. 수도방수소(防水所)공사16. 고원·용인 숙사건축공사17. 선박수리용 선거(船渠) 마감공사 18. 기타 경리.. 2025. 3. 17. 『진해』(1912) - 16. 금융, 17. 운수교통 16. 금융 진해의 현재 금융은 극히 순조롭다. 무슨 근거로 순조롭느냐 하면 일부 대금업자의 자금 융통에 의해 한정된 호수 입가의 자금 결핍을 보충해, 여러 분야의 실업가들은 성실하게 활동하고 있기 때문인지 파산, 도산이란 비운을 당했다는 말을 듣지 못했다. 다른 업종으로 바꾼 자는 본래의 자본금 부족인 데다가 인내심이 없는 사람이다. 실제로 순조롭다고 말해야 할 정도까지 진전되어 있을지는 아주 의심스러운 바이지만, 다른 도시 현황에 비해 결코 오늘의 진해가 금융의 원만함이 부족하다고는 말할 수 없다. 기관으로서는 오직 대금업자나 전당포업자 외에 아직 아무런 시설조차 없으나 장래에 나오리라고 믿는다. 현재 상황은 이상과 같으며 더 써야 할 자료도 없는 것이다. 17. 운수교통 항만으로서의 운수교통은 아주.. 2025. 3. 3. 『진해』(1912) - 14. 상항(商港)으로서의 진해만, 15. 물자의 집산 14. 상항(商港)으로서의 진해만 진해만이 상항으로서의 가치가 있음은 전항(前項)에서도 설술(說述)한 대로이며 여기서 다시 말할 필요는 없을 줄로 안다. 현재, 내지에서 당항에 입항할 선박은 어느 것이나 다 부산을 거쳐 오는데, 가까운 장래에 시모노세키(下關), 모지(門司), 하카타(博多), 나가사키(長崎)의 각 항구에서 직항선이 밤낮 가리지 않고 수시로 입항하여, 오사카 상선(大阪商船) 같은 회사도 육상수송기관이 완비됨에 따라 꼭 입항하게 될 것이다. 기선(汽船) 입항이 얼마나 되느냐도 역시 항만 자체의 값어치를 가리키는 것이라 하겠다. 현재 진해만을 보라. 재등만(아래 사진), 행암만 두 곳에 숲같이 빽빽이 세워져 있는 돛기둥 그 수는 얼마인가. 이것만 보아도 상항으로서의 값어치를 알아차릴 수가 있을.. 2025. 2. 24. 『진해』(1912) - 13. 상업 13. 상업 이곳의 상업이 점차 진흥의 영역에 접어들고 있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렇다 해도 일반적으로 상거래란 것이 극히 유치한 것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것은 상업지가 된 지 얼마 되지 않는다는 경력 부족 탓만이 아니며, 오늘날까지 이주하고 있는 상인들이 비교적으로 대자본가가 적기 때문이며 일면에서는 그럴 수밖에 없다고도 사료된다. 그래도 진해의 실업가 즉 상인이고자 하는 자들은 더욱 더 원대한 포부 밑에 각자가 발분 노력해야 할 것이라는 주의를 환기하고 싶다. 진해 군항으로서 세계적으로 알려져 있어도 상항(商港)으로서는 아직 알려져 있지가 않다. 그런데 선박 출입에 편리한 양호한 항만을 두고 있는 이곳은 상항으로서 그 진가가 발휘되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한편에서 보면 진해 군.. 2025. 2. 17. 『진해』(1912) - 12. 산업 12. 산업 토지에 생산물이 있느냐 없느냐는 그 땅의 소장(消長, 성쇠, 쇠함과 성함) 문제에서 결코 내버려 둘 수 없다는 것이 자명(自明)한 이치이다. 우리 진해는 생산물이 적은 지역, 즉 소비지이며 생산지가 아니라고 하는 자가 있지만 이는 사리에 어두운 사람이 하는 소리이며 소생은 찬동할 수가 없다. 진해만에서 나오는 어류는 조류 관계상 한난류 양류(兩流)에 서식하는 것들 모두를 망라하고 있다. 겨울철에는 특히 많은 어류를 포획하는데 이는 고장 수요를 충족시키기에 여유가 있으며 조선 내 여러 곳은 물론 일본의 각 지방에 수송하고 있다. 행암만 부두에 있는 조선해수산조합의 모범어촌이 완성됐을 적에는 놀랄만한 기세로 어획물을 만재한 어선들이 아침, 저녁에 출입함에 틀림없을 것이다. 이것이 진해만에서 나오.. 2025. 2. 10. 『진해』(1912) - 11. 종교 11. 종교 그 땅의 종교 상태라는 것은 바깥에서 관찰할 수는 없다. 그것은 심리의 움직임이기에 결코 외형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도 진해의 종교란 불교가 주가 되어 있다고 보는데 별 지장은 없으리라.기독교나 곤코오쿄(金光敎 敎派神道의 하나)나 텐리교(天理敎派神道의 하나) 등도 있기는 한데 종교상의 세력은 극히 미미한 것임에 틀림없다. 불교라 함에도 종지(宗旨, 종문(宗門)의 교의(敎意)의 취지)는 여러 가지가 있거니와, 우선 신슈(眞宗, 淨土眞宗의 준말), 조오도슈(淨土宗, 불교의 한 종파인 정토종을 말함), 니치렌슈(日蓮宗, 일본 불교 종파의 하나로 법화경(法華經)을 종지(宗旨)로 함), 신고슈(眞言宗, '진언종'으로 불리며 일본 불교의 한派), 젠슈(禪宗, '선종'으로 일컬어.. 2025. 2. 3. 『진해』(1912) - 10. 소방기관 10. 소방기관 진해의 소방 설비는 개항 당시 호구(戶口, 호적상 집의 수효와 식구 수)가 아직 적었을 때부터 갖추어져 있었다. 조장(組長)에는 미야자키 미네타(宮崎峰太)를 추대하였고, 조원은 혈기 넘치는 사람이 꽤나 있었다. 그리고 단순히 소방뿐만 아니라 일반 공공사업에도 진력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호구가 증가함에 따라 일대세력을 이루게 되었던 것이다. 당시 의용소방조라 칭해 공공기관의 하나로 지목되어 있었는데 시가지가 급속히 발전함에 따라 어떻게 해서라도 완전한 조직으로 거듭나야하기에 이르러, 경찰에 직속해 소방기구 설비등도 충분히 갖추느라 당시 구와바라(桑原) 경찰서장이 위원장이 되어 유지들과 협의한 결과 창립위원 몇 명을 선별해 기부금 모금에 착수했다. 그런데 약 3천 엔이란 기부금이 모아져 바로.. 2025. 1. 27. 『진해』(1912) - 9. 통신 9. 통신 진해에 우편국이 개설된 것은 올해 1912년 1월 25일이며, 그 때까지는 현동 우편소에서 우편사무 전반을 취급해 왔다. 진해우편국에서는 우편, 우편어음, 우편저금, 전신 및 전화를 취급해, 마산부 중진해,웅서 2면을 그 우편구역으로 삼고 있으며 진해, 웅동(熊東), 웅서, 천가(天加), 웅읍 각 면을 전신구역으로 삼고 있다. 또한 전화통화구역은 사천(泗川), 방어진(方魚津), 삼천포(三千浦), 영산(寧山), 자인(慈仁), 마산, 대구(大邱), 약목(若木), 군위(軍威), 안동(安東), 영천(永川), 경산(慶山), 기장(機張), 창원(昌原), 부산진(釜山鎭), 부산(釜山), 초량(草梁), 동래(東來), 울산(蔚山), 장생포(長生浦), 왜관(倭館), 성주(星州), 의성(義城), 경주(慶州), 진.. 2025. 1. 20. 『진해』(1912) - 8. 교육 8. 교육 진해에 심상고등소학교(아래 사진, 1920년대)가 개교된 것은 올해(명치 45년, 1912) 1월 10일부터이며 개교 당초에는 130여명 아동을 수용한 것에 지나지 않았으나 개교한 지 얼마 되지 않아 250명에 도달했다. 그 이유는 당지에 개교를 보기 이전에는 아동 모두가 해상 7해리(약 13km)여를 소증기선(기선(汽船)의 옛 명칭으로 기계력(증기기관)으로 추진시키는 배의 총칭)으로 마산에 통학했기 때문이다. 그 불편함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이며 아침 해뜨기 전부터 저녁 5시나 6시경이 될 때까지는 집에 못 돌아올 지경이었다. 게다가 그 기선의 승강은 아주 위험한 것이라 바다 속에 떨어진 아동 숫자도 얼마나 되는지 모른다. 몸이 발육 도상에 있는 아동에게 마산 진해 해상 통학이란 쉽지는 .. 2025. 1. 13. 『진해』(1912) - 7. 위생 7. 위생 진해는 조선에서 보기 드문 건강지로 지목되어 있다. 위생시설에 관해서는 아직 만전을 기했다고까지는 말 못하겠지만 결코 불완비한 것은 아니다. 십수 명의 개업의가 있어 이들이 시정(市井, 인가가 모인 곳으로 중국 상대(代)에 우물이 있는 곳에 사람이 모여 살았다는 데서 유래)에 흩어져 개인위생을 통어(統御, 통괄)하고 있으며 나아가서 공중위생에 보탬이 되고 있는 것이다. 공립병원도 조금 있으면 훌륭한 것이 설치될 것이다.또한 사립병원으로는 진해병원 외 두세 개 규모 있는 병원이 있다.군항지이기 때문에 위생 단속에 관해서는 엄중하다. 해군병원도 멀지 않아 설립될 것에 틀림없을 터이니 위생기관에는 유감이 없음을 기할 것이다. 학교조합에서는 중초리(中初里)에 격리병사를 건축하여 전염병 환자 수용이 가.. 2025. 1. 6. 『진해』(1912) - 6. 풍광미(風光美) 6. 풍광미(風光美) 진해에 풍광미가 풍부하다는 것은 이제 와서 거론할 나위는 없을 터이지만 서너 개 있는 그대로를 기록해 두자 (일) 일출안개 속에 햇님이 하얀 옥처럼 빛나고 있다. 울퉁불퉁한 천자봉연산(天子峰連山)이 서서히 밝아지며 짙은 회색 쪽배가 한 척, 조용이한 기름 같은 수면에 까만 선을 가느다랗게 그어가면서 저쪽 덕산(德山) 쪽으로 저어 가고 백의 입은 한인이 깜짝 놀라 서서 지켜보고 있다 (행암만).그렇게도 유명한 큰 팽나무 부근의 상야등(常夜燈)에 엷게 불씨가 남아 있다. 아직 오가는 사람이 거의 없을 때에 무슨 구미(組)이라고 옷깃에다 적힌 작업복을 입은 사내다운 젊은이가 상반통(常磐通, 도키와도오리, 아래 사진-상반통 2정목)를 꺾어 천첨정(川添町, 가와조에초)쪽으로 들어갔다. 무언가.. 2024. 12. 30. 『진해』(1912) - 5. 기후 5. 기후 조선 속에서도 경상남도 일대는 기후가 좋다고 알려져 있다. 특히 마산, 진해, 부산은 기후가 온화하며 어느 계절이나 한결 같이 내지와 다름이 없다고 전해지고 있다. 우리 진해 땅은 마산과 부산 중간에 위치해 각 계절의 기후는 또렷이 나뉘어져 우량이 많지도 않고 바람 또한 강하지 않게 적절하니 참으로 살기 좋은 곳이라 하겠다. 동서로 길게 뻗어 있고 남북으로 짧으니 마치 한 일자 모양인데, 시가지는 언덕과 언덕사이에 있으며 단 남쪽 한정된 곳만이 재등만을 면하고 있을 뿐이다. 그 때문에 겨울에도 귀를 찢을 만한 센 바람이 불지도 않으며 여름에도 혹서로 쇠를 녹일 듯한 더위는 없다. 그는 전면이 바다인 반면 후방에 높은 산이 있어서 유명곡(有明谷, 아리아케다니) 깊숙한 곳까지 바람을 보내기 때문이.. 2024. 12. 23. 『진해』(1912) - 4. 이상적인 시가지 4. 이상적인 시가지 진해 시가지는 군항경영이란 제1차 계획에 따른 것이며, 해군당국이 꽤 고심한 끝에 설계 한 것임은 명백하다. 시가지 대하를 제3기로 한 것도 결국 완전한 시가지를 조성한다는 방침 아래 나온 것에 틀림없을 것이다. 이것은 제1기 대하지 36,000여 평에 집들이 나란히 세워지게 된 후, 이 정도이면 수급이 일치해 조금도 불편을 느끼지 않을뿐더러 나아가 이 정도로도 부족하다고 사료되었을 때에 제2기 대하를 실시하게 되며, 제2기 대하가 제1기와 마찬가지 상태에 이르렀을 때에 제3기 대하를 실시할 것이라는 순서를 염두에 두고 있었던 것이다. 때문에 제2기까지는 기술한 바와 같이 실시되었는데 다만 제3기 대하가 제2기의 완성 이전에 발표된 것은 학교조합 유지를 위해 연구 결과가 예정보다 빨.. 2024. 12. 16. 『진해』(1912) - 2. 지세(地勢) 2. 지세(地勢) 진해는 웅중(熊中), 웅서(熊西) 양면의 일부이며 기후는 온화하고 땅은 비옥한데다가 풍치(風致)가 다채로운 곳이다. 해륙에 자연의 산물이 나오며 한국에서는 다른 유례가 없을 만큼 자원이 풍부하다. 지금 지형 개요를 설명하자는데 웅중, 웅서 양면의 동북쪽은 가파른 산들이 이어져 있고, 웅중면 동북 끝에는 장복산(長봉우리가 높이 솟아 있으며, 여기를 넘으면 즉 웅읍면(熊邑面)이다. 웅서면 동방에는 옛적부터 이름 높은 산성산(山城山, 야마시로야마)이 있다. 이 산성산에는 지금부터 약 4001년 전, 임진왜란(文祿慶長の役, 분로쿠게이조노에키)에서 우리 맹장과 맹졸들이 성을 지었던 흔적이 남아있다. 이렇게 삼방이 뾰족한 산에 둘러싸여, 오로지 남쪽만이 세계에 명성 높은 진해만인 것이다. 진해만은.. 2024. 12. 2.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