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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아내와 『KBS 아침마당』에 출연했습니다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09. 10. 21.


대한민국 주부들이 가장 많이 본다고 알려진 KBS '아침마당'에 출연하였습니다.
살다보면 별일도 다 겪는다더니 그 말이 틀리지 않은 것 같습니다.





나만 출연하고 자신은 방청석에 앉아 있는 줄만 알고 있던 아내는 서울 가는 KTX 안에서 둘이 함께 나란히 출연하는 걸 알고 걱정을 태산 같이 해댔습니다.

자신을 드러내기 싫어하는 아내라,
며칠 전까지만 해도 게스트 석에는 나 혼자만 앉고 아내는 방청석에 있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출연 하루 전날 점심 때 쯤 전화가 왔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아내와 나란히 앉아야 그림이 나온다고.
그 사실을 열차 안에서 알려주었던 겁니다.


서울에 도착해 방송국에서 예약해둔 호텔에 여장을 풀고 나니 밤 10반 쯤 되었습니다.
대본을 읽어보기 위해 객실에 있는 컴퓨터를 열었습니다.
명색이 대한민국 심장인 여의도의 비즈니스호텔인데 객실 컴퓨터에 한글프로그램이 깔려있지 않았습니다.
부랴부랴 1층에 내려가 조그만 방으로 안내되어 대본 1부를 출력해 방으로 올라왔습니다.
일주일 전에 담당PD와 작가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긴 했지만 대본은 처음이었습니다.

이것저것 묻는 질문이 많았습니다.
아내에게 묻는 간단한 질문 몇 개도 있었습니다.
TV출연이 평생 처음인 아내의 걱정이 점점 쌓이는 것 같았습니다.
생방송에, 전국방송이니, 한숨을 쉬고 걱정을 하며 어찌할 바를 몰라했습니다.
밤새도록 잠을 못 이루고 뒤척이는 것 같았습니다.

아침 7시 반에 본관 1층 로비에서 류지영 작가를 만나 함께 대기실로 들어갔습니다.
처음 들어가는 곳이라 어색해 하는 우리 부부를 류 작가가 친절하게 안내해주어 어색함이 덜했습니다.

개그맨 엄용수 씨, 가수 정훈희 씨를 복도에서 만나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화면으로만 보았을 뿐 직접 만나기는 처음이었습니다.
엄용수 씨는 워낙 유명한 개그맨이라 보는 순간 무의식적인 웃음이 나왔고,
정훈희 씨는 좋아하는 가수라 그런지 가깝게 느껴졌습니다.

머리를 손보고 얼굴분장도 했습니다.
마이더스의 손이 몇 번 왔다 갔다 하니 평소보다 훨씬 잘생긴 얼굴로 내가 바뀌더군요.

분장실에 다녀온 아내는 ‘피부가 좋고 흰 머리칼도 참 곱다’고 한 분장사의 말을 은근히 자랑했습니다.

박 건 PD가 들어와 차를 권하면서 생방송에 필요한 이야기를 몇 가지 들려주었고,
김윤양 담당 작가도 ‘편안하게, 평소 이야기하는 것처럼 하면 된다’며 마음을 편히 가질 수 있도록 도와주었습니다.

김재원 아나운서는 분장실에서 만났는데 큰 키에 미남이더군요.
유명한 이금희 씨는 방송 시작하기 직전 스튜디오에서 만났는데 화면에서 볼 때보다 훨씬 날씬하고 예뻤습니다.

진행을 돕는 김미연 FD는 자신이 마산성지여고 출신이라 소개하며, 우리더러 ‘마산사람이 출연해 너무 기쁘다’고 친절하게 안내해주었습니다. 웃음이 해맑았습니다.

TV스튜디오가 처음인 아내는 신기한 듯 이것저것 구경하느라 바빴습니다.

KBS 화요일 아침마당은 ‘화요초대석’이란 이름으로 1부와 2부로 나누어 게스트가 두 번 출연하는데 우리는 1부의 탤런트 이하얀 씨에 뒤이어 2부로 출연하였습니다.


                                  


생방송이 시작되었습니다.

지역에서 라디오 진행도 해보고 TV출연도 몇 번 해보았지만 ‘전국 생방송’이란 무게 때문인지 시작할 때 조금 떨렸습니다. 하지만 곧 적응되었습니다.

아내 걱정을 좀 했는데 무난히 해내더군요.
하기야 산전수전 다 겪은 대한민국 50대 주부가 아무리 생방송이지만 떨고만 있겠습니까.

눈 깜빡할 순간에 시간이 다 지나갔습니다.
개인적인 이야기는 못하고 책 읽기에 얽힌 이야기만 나누었습니다.

진행자와 패널 모두 백전노장들이라 아무 탈 없이 끝났습니다.

기념으로 출연진과 함께 사진을 한 장 찍었습니다.
'우리 부부가 언제 또 KBS스튜디오에 오겠느냐'고 부탁했더니 모두 즐겁게 응해주었습니다.


      <왼쪽부터 김재원, 엄용수, 허정도, 정미라, 정훈희, 이금희>

                     <마산성지여고 출신 FD 김미연씨와 함께>

스태프들과 1층 로비로 나와 커피를 마시며 뒷이야기를 나눈 후 서울역으로 향했습니다.
늘 경상도 사람들만 대했던 탓인지, 친절하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습니다.

꺼 두었던 휴대폰을 켜니 방송 본 사람들이 보낸 문자 메시지가 한꺼번에 밀려들어오더군요. 한참 걸렸습니다.
전화도 많이 받았습니다.
아내는 처녀 때 알고지냈던 사람들에게까지 전화를 받았습니다.
아침마당의 위력, 정말 대단했습니다.

방송이 어땠는지 염려가 많던 아내는 전화하는 사람마다,
‘흰 머리칼이 참 좋더라, 말 실수 없었고 웃는 모습이 좋았다, 차분하고 멋 있었다’는 등의 립서비스에 마음을 놓는 것 같았습니다.

밤에 인터넷 ‘다시보기’로 들어가 아내와 함께 방송을 보았습니다.
큰 실수가 없어서 다행이었고, 좋은 추억 하나 만들었다며 즐거움을 나누었습니다.


2년 전 가을,


안부대상포진에 걸려 몸져누운 아내에게 책을 읽어주게 된 것이 시작이었습니다.

읽은 책에 얽힌 이야기를 책으로 엮어 펴냈고, 이 책이 여기저기 소개되면서 『책 읽어주는 남편』이 알려졌습니다.


그러자 주위에서 ‘이러다가 KBS아침마당까지 출연하는 것 아닌가?’라고 농담했지만 기대하지는 않았습니다.

추석 지난 며칠 뒤,

책의 편집 담당자였던 출판사 이수희 대리가,
‘KBS아침마당에서 내 전화번호를 물어보았으니 조금 있다가 전화 할지 모른다’고 알려 주었습니다.

그 날 오후, 류지영 작가가 전화를 해왔습니다.
아침마당에 출연할 수 있겠느냐고.


우리 부부에게 참 재미있는 추억거리가 하나 생겼습니다.
파일로 남겼다가 나중에 늙으면 가끔 꺼내볼 생각입니다.
아내는 훗날 손자에게 보여주며 자랑할 거라고 함박 웃었습니다.


‘책 읽어주는 남편’이라고 전국에 알려졌으니,
이젠 어쩔 도리가 없다 싶어 오늘 아침에도 읽고있던 김진애의 ‘도시읽는 CEO’를 계속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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