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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 도시이야기

김형윤의 <마산야화> - 60. 해방 전의 전기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5. 12. 7.

60. 해방 전의 전화

 

해방 전(소화 13, 1938) 부산 체신국 관할 중 경남 도내의 전화 가설 상황을 보면 부산을 필두로 하여 부··읍 소재지 25개처인데, 그 가운데 우리나라 사람들의 전화 소유자가 없는 곳이 두 곳이었다.

장승포와 진해읍이 그것이다.

진해는 일본 해군의 군항이며 일본인의 집단지이기도 하지만 조선인 거주촌인 경화동을 포함하여 전화대수 199대 중 경화동 주조주식회사가 전화번호에 나와 있는데 그것이 탁주양조장(조선인 경영?)이라 해도 전화는 개인 소유는 아니엇을 것이며, 읍내에 화월(華月)이란 중국요리점을 빼면 진해읍의 전화는 일본인 일색이었다.

그 당시의 전화에 관한 각종 요금을 오늘날의 그것과 비교해 보면 참으로 격세의 감이 불무(不無)하다. 

1. 국내 통화료

통화선

해방 전

해방 후

통화선

해방 전

해방 후

부산

45

40

서울

120

120

의령

35

70

대전

80

100

하동

50

100

대구

50

70

함양

60

100

인천

140

140

거창

60

100

안동

80

100

김해

60

25

광주

90

100

삼천포

45

75

광양

60

 

진주

40

70

수원

100

120

 

2. 국외(일본) 통화료(마산 기점)

대판(大阪) 200, 대분(大分) 150, 신호(新戶) 200, 하관(下關) 120, 광도(廣島) 150, 부산 기점을 보면 동경(東京) 300, 경도(京都) 22, 녹아도(鹿兒島) 170 

3. 전화 가설, 명의서환(名義書換) 및 기계 이전료

각지별 등급이 매겨져 있어 요금이 동일하지 않다(부산 4급지, 마산·진주·통영 7급지, 여타 지방 8~10급지).

전화 가입 등기료는 4급지 15, 7급지와 진해, 밀양, 동래 등 8급지는 10, 명의서환료(名義書換料)7·8급이 3, 가설료는 7급지 200, 기계의 타처 이전료는 20원으로 되어 있었다. 

4. 전화 사용료의 납부 방법

오늘날과 같이 매월 납부하는 것이 아니고 1년을 4기로 나누어 기말에 납부하게 되어 있었고, 사용료 액은 일반 통화자와 전용 사용자로 나누어 일반 통화자는 4급지(연액) 102, 7급지 84, 전용 사용자는 4급지 90, 7급지 72원으로 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