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중앙 방면
신마산의 동북 경계선인 신게츠케이(新月溪)에서부터 동북으로 쇼군가와(將軍川)를 건너 마산포 서남경계인 샤쿠잔바시(尺山橋)에 이르는 지역을 총칭하는 것이다.
우편물의 집배관계에서 보면 차라리 신마산이라고 부르는 것이 지당하리라 생각된다.
신마산 교마치(京町) 1정목에서 미야코바시(都橋)를 건너가는 길, 혼마치(本町) 1정목에서 쇼오겐바시(昌原橋)를 건너 미야코마치(都町) 1정목에 나가는 길, 야나기마치(柳町)에서 구마가와바시(熊川橋)를 건너 미야코마치 1정목과 오기마치(扇町)로 나가는 세 갈래 길로 전의 거류지와 접속하고 있다.
이 부근에서 미야코마치 대로의 번영함은 도리어 거류지 때보다 못하다.
대로변에 창원군청, 자혜병원, 경찰서, 고등여학교 등이 대면적을 차지하고 있으니 상점가로서의 번영을 저해하고 있는 것이라 하겠다.
이 중앙 방면의 중앙을 뚫고 흐르는 것이 장군천이다.
상류에 있는 장군교 일대는 다나카 손(田中遜) 어른(伯)이 농사 경영을 하는 겟포엔(月浦園)의 식림지이며, 고려말 처사 장장군(張將軍)이 왜구와 싸우다 외로이 전사한 명예를 기려서 장군천이라 명명, 월포원 내에 장군이 영면(아래 사진)하고 있다.
이 장군천에 걸린 미야코마치의 다리를 월포교라 하며 토오리마치(通町)에 걸린 다리를 장군교(將軍橋)라고 한다.
장군교 부근에서 비스듬히 내려와 미야코마치에로 나오는 도로는 명치 39년(1906) 초겨울에 개통되어 당시 거류지와 마산포에서 유일한 연락도로였는데, 명치 43년(1910)에 마산 진주간 일등도로로서 마산역전까지 개통됨에 따라 비로소 연락선이 두 선이 되어 샤쿠잔바시(尺山橋)에서 다시 마주치면서 한 길이 되어 마산포로 들어가는 것이다.
당시까지만 해도 마산역전에는 높이 40~50자 되는 작은 언덕이 있어 그 정상에 원두막 같은 것을 지어 역의 직원들이 달구경 하거나 바람을 쐬거나 하는 위안의 휴게장소로, 츠키미오카(月見丘)라 이름을 붙였다.
하변(下邊) 도로는 비가 오면 진흙 밭이 되는 곳이라 인기척조차 없었다가 마산 진주간 도로가 개통되면서 그 언덕을 없애고 도로를 만들었다.
그 언덕 터는 현재의 도키와(常磐) 여관으로부터 마루니(丸二) 운송점 창고 소재지 일대였다고 한다.
장군천 하류 동쪽에 명치 44년(1911) 5월 23일, 처음으로 전 항구에 전기를 공급하는 일한가스전기회사의 후신인 경성전기회사 마산지점이 있다.
아주 넓은 화력발전소(아래 사진)를 지어 대정 원년(1912)에는 진해로, 동 13년(1924)에는 창원에, 동 14년(1925)에는 진영에까지 급전(給電)하게 되었다.
주간에는 정미, 제재, 제면의 각 공장에 급전하며 또한 여름에는 선풍기에도 송전하고 있다.
그러나 야간 교통안전을 위한 가로등 한 개도 제공하지 않은 점, 요금이 다른 곳에 비해 비싸다는 점, 또한 임시 공동사업에 대한 협찬이 없다는 점 등 세 가지에 대해 세평은 아주 좋지 않은 것 같다.
밤중에 요소요소에서 켜지는 전등은 다 개인의 기부로, 혹은 부청에서 지출하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다만 좋은 것 한 가지는 다른 곳에 비해 정전 등 고장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중앙 방면의 오기마치(扇町)에서 토오리마치(通町) 전부와 미야코마치(都町), 미나토마치(湊町)를 통해 해안에 이르는 지역은 집의 유무를 불문하고 모두 다 철도용지이며, 완월과 신월의 두 동을 합쳐 내지인 약 360호 1천5백 명, 선인 약 750호 4천 명을 포용하고 있다.
한마디로 말해 이 방면을 평한다면 철도관사 동네이며, 은행 회사 사택 동네이며, 관공리 교원 동네이며, 대서인 동네, 변호사 동네, 연금 생활자 은퇴 동네며 사원들 동네라고도 말할 수가 있다.
그 대부분은 가옥 건축허가가 나오지 않는 철도용지로 그 내의 논밭은 초록에 덮이고 가을철에는 황금파도를 이루고 있다.<<<
이 글은 창원시정연구원이 2021년에 번역한 『馬山港誌』(1926) 중 104번 째 것이다. 그림은 별도로 삽입하였다. 『馬山港誌』는 일제강점기에 발간된 일본 문헌 중 가장 가치가 높은 책으로 평가 받고 있다. 저자는 앞서 게재한 『馬山繁昌記』와 같은 스와 시로(諏方史郞)이다. 본 포스팅은 비영리를 전제로 창원시정연구원의 양해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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