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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 도시이야기

마산항지(1926년) - 105 - 곤권(坤卷) / 제25장 내지인의 거주잡황(居住雜況)

by 운무허정도 2024. 6. 24.

3. 마산포 방면

 

동성(東城), 중성(中城), 서성(西城), 오산(午山), 성산(城山), 성호(城湖)의 여섯 동네로 이루어진 마산포는 대정 2(1913)의 임시토지조사 때 모토마치(元町) 도미마치(富町) 사이와이마치(幸町) 고토부키마치(壽町), 이시마치(石町), 다와라마치(俵町), 요로즈마치(萬町), 신마치(新町)란 여덟 동네로 개정되고 오동(午東), 상남(上南), 성호(城湖), 자산(玆山)의 네 개 동이 여기에 연접하고 있다.

내지인은 약 380호에 15백명, 선인은 2천 호에 95백 명, 지나인은 50호에 80, 영국인은 1호에 7명을 포용하고 있다.

거주민은 농업, 공업자를 제외한 나머지는 대개 상업가로서 내선화인(內鮮華人)이 삼파전을 벌이고 있다.

<1920년대 후반 마산포>

 

그 주요한 것은 무역 및 미곡, 견면포사(絹綿布絲), 날 것 염장한 것 말린 것 등의 해산물, 장신구 백화(百貨), 세화와 버전 제작, 고무신과 기타 각종의 상인들로서 오사카, 고베 지방과 직거래를 하는 이가 적지 않다.

특히 미곡상은 부근 13개 군의 세공미(稅貢米)를 이곳에서 집적해 경성에 금납을 위해 경매하던 관계로 수백 년래의 경험을 가진 무역 수출입의 기상도 있다.

또한 음력 510일의 한 달 여섯 번의 장터에서 사근사리(四近四里) 권내의 고객을 끌어들여, 신마산이나 중앙부의 사람 모습이 많지 않을 때에도 마산포는 항상 발랄하고 활기에 차 있다.

비유컨대 신마산 방면이 사리판단이 빠른 에도뜨기(江戶子, 에도코는 도쿄의 1868년 이전 이름인 에도의 사람이란 듯으로 우리나라에서의 서울내기(서울뜨기)와 비슷한 의미로 볼 수 있다)나 의리를 지닌 예기 같다고 친다면, 마산포는 저축에 여념이 없는 시골뜨기 혹은 지갑을 열지 않는 인색한 가정주부와 같다고 할 것이다.

옷 같은 것은 아주 소박하며, 가정에 따라서는 주인이나 주부가 매일 아침저녁으로 스스로 바구니를 들고 공설시장에 나가 생선이나 채소를 사들이는 것을 보면 참 속이 찬 것처럼 보이기는 하나, 인정은 그다지 두텁지 않고 의협의 마음도 분명히 아주 적다하겠다.

이상의 정황이기 때문에 생활에 대한 경비를 절로 절감이 되어 옷도 화려하지 않은 만큼 여러 면에서 신마산에 비해 경제가 잘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매월 신마산 방면에서는 외상 수금꾼이 한두 번 독촉해도 지불하지 않는 사람이 있는데 반해 이 방면에서는 단번에 지불해 준다고 하니, 생황 상태에 감이 올 것이다.

신마산 방면의 큰 가게 등이 최근 이곳 마산포에 지점을 내거나 본점을 옮기는 일이 있다는 점에서도 마산포의 알뜰함을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은 창원시정연구원이 2021년에 번역한 『馬山港誌』(1926) 중 105번 째 것이다. 그림은 별도로 삽입하였다. 『馬山港誌』는 일제강점기에 발간된 일본 문헌 중 가장 가치가 높은 책으로 평가 받고 있다. 저자는 앞서 게재한 『馬山繁昌記』와 같은 스와 시로(諏方史郞)이다. 본 포스팅은 비영리를 전제로 창원시정연구원의 양해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