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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화폐민주주의연대 뉴스레터 - 1 / 서익진의 Q&A, 용어해설

by 운무허정도 2022. 4. 4.

서익진은 경남대 경제금융학과 교수였다. 프랑스 그르노블 사회과학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한국경제와국제경제를 다룬 다수의 저서와 논문, 번역서를 출간하였다. 2008년 서브프라임 위기를 계기로 화폐금융의 문제점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여, 현재는 화폐의 본질과 현행 통화 공급시스템의 구조적 문제점을 개선하려는 ‘화폐민주주의연대’의 공동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이 글은 그가 「화폐민주주의연대 뉴스레터」에 게재한 것이다.

 

서익진의 화폐민주주의 Q&A - 1         

화폐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민주주의에 관한 최고의 정의는 누가 뭐라 해도 미국 링컨 대통령이 게티즈버그 연설문에서 제시한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치”라는 정의일 것이다. 우리는 민주주의를 구성하는 이 세 가지 요소를 각각 순서대로 ‘국민주권’과 ‘국민자치’ 그리고 ‘국민복지’로 해석한다.

이 원리를 ‘화폐 민주주의’에 적용하면, 그것은 “국민이 자신의 화폐를, 스스로, 자신을 위해 발행하는 시스템”이 된다. 이를 요약한 것이 <표 1>이다. 각 요소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첫 번째, ‘국민의 화폐’라는 규정은 화폐의 선정과 그 발행은 주권의 행사이며, 민주주의 정체에서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는 사실에서 나온다. 주권이란 국가의 의사를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최고·독립·절대의 권력을 지칭하므로 화폐주권이란 화폐와 관련된 국가의 의사를 결정하는 최종 권한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우리가 실현하고자 하는 화폐는 단순히 국가가 발행하는 ‘주권화폐’(sovereign money)가 아니라 ‘국민주권화폐’(national sovereign money) 또는 줄여서 ‘국민화폐’라 부르고자 한다.

주권화폐는 과거 절대군주가 발행하던 화폐 그리고 민주정체 하에서도 정부가 발행하는 화폐를 주권화폐라고 불러왔기 때문에 이와 구별하기 위해 우리는 ‘국민(주권)화폐’로 부르는 것이다. 여기서 국민 대신 시민이라는 명칭을 사용해 ‘시민(주권)화폐’라고도 부를 수 있다. 우리가 ‘국민’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이유는 단지 특정한 정치 공동체의 합법적인 구성원 전체를 지칭하는 데는 ‘국민’이라는 용어가 더 적합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두번째 ‘국민에 의한 통화 발행’이라는 원리는 모든 국민이 통화를 발행할 수 있는 균등한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근거를 둔다. 이 국민 개개인의 통화 발행권 균점 원리는 주식회사의 1주1표 원리가 아니라 민주주의의 1인1표 원리와 상통한다. 이 원리는 신규 통화의 발행액과 그 배분 방식을 결정할 때 반드시 준수되어야 한다.

그러나 정치적 주권의 행사에서 대의 민주주의가 불가피하듯이 화폐적 주권의 행사도 그러하다. 국민 각자가 자신의 화폐 발행 권리를 행사한다면 엄청난 혼란이 초래될 것은 물론이고 화폐의 기능조차 할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정부나 중앙은행 같은 공공기관을 두어 대행하도록 할 수밖에 없다. 현재 중앙은행이 작동하고 있으므로 중앙은행의 개혁을 통해 중앙은행이 은행과 정부를 위해서만 일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을 위해서도 일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렇다면 별도의 기관을 수립해야 할 필요는 없어질 것이다.

기존의 중앙은행을 활용하든 새로운 기관을 설치하든 이에 대한 민주적 통제장치의 구비, 특히 의사결정 거버넌스에 다양한 이해집단 대표의 참여가 보장되어야 한다. 현행 중앙은행의 최고의사결정기관인 통화금융위원회의 위원 구성은 대폭 확대되고 민주화되어야 한다. 위원은 정치적 이해와 전문지식에 의해서만 선출되어서는 안 되고 다양한 이해집단의 의사를 반영할 수 있어야 한다.

<이미지 출처 : IMMR 페이스북> 국제 통화 개혁 운동은 영국 조직인 Positive Money의 주도로 2013 년에 설립 된 27 개국의 회원 조직을 가진 통화 개혁 조직을위한 세계적인 우산 조직입니다. 그들의 정치적 목표는 은행 대출에 의한 돈 창출을 부채없는 돈을 창출하는 시스템으로 대체하는 것입니다. 위키백과(영어)

중앙은행은 국민 개개인의 본원통화 접근성을 보장하기 위해 한국은행 계좌를 개방해야 한다. 국민 각자가 개설한 중앙은행 계좌를 통해 기본소득이나 정부 보조금을 쉽게 지급할 수 있으며, 국민은 이 계좌로 조세도 납부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중앙은행 경상계좌는 현행 제도 하의 시중은행 경상계좌를 완전히 대체한다. 따라서 국민의 경상 자금은 100%의 안전성을 누릴 수 있고, 중앙은행은 국민과 직접 자금 거래를 함으로써 통화정책이 실물경제에 미치는 효율성은 대폭 높아질 것이다.

시중은행은 더 이상 국민의 경상계정을 개설하지 못하거나 할 수 있다 하더라도 신용창조 기법으로 새 돈을 만들어낼 수는 없게 될 것이다. 시중은행의 특권적 지위는 사라지고 여타 제2금융권 은행과 마찬가지로 수신 및 여신 경쟁을 하고 자기 책임 하에 투자 운용을 해야 할 것이다.

세 번째 원리인 ‘국민을 위한 통화 배분’은 민주적 거버넌스 기구를 통해 결정된 신규 통화 발행량을 국민을 위해 배분해야 한다는 원리다. 중앙은행이 경제에 통화를 주입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먼저, 신규 발행액의 전액 또는 일부를 국민 배당금으로 나누어주는 것이다. 이것은 기본소득이나 마찬가지이므로 당연히 기본소득의 기본원리들을 준수해야 한다. 다음, 일부를 정부에게 주어 특별재정회계를 설치하고 국회의 동의를 받아 사용하게 하는 것이다. 당연히 이 돈은 공익의 실현이나 사회적 필요 충족을 목적으로 사용되어야 한다. 주요 인프라 구축에 사용할 수 있고, 더 이상 새로운 국채의 발행은 필요 없어질 것이므로 기존 국채의 상환이나 감세에 따른 세수 보전용으로 사용할 수도 있다.

한국처럼 지역간 불균등 발전이 심각한 나라에서는 지역 경제 활성화를 위해 지역공공은행의 자본금으로 사용할 수도 있다. 이 경우 중앙은행은 각 지역에 지점을 설치하여 공공은행으로서의 기능을 수행함과 동시에 앞서 말한 해당 지역 주민들의 중앙은행 계좌 관리를 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은행의 자금중개 기능이 경제의 필요에 부응하지 못하는 경우 중앙은행은 은행 대상 할인창구를 개설하여 엄격하게 설정된 담보 기준에 따라 주식, 부동산, 보험 분야 등 비생산적인 분야를 제외한 실물경제 투자를 위한 신규 자금을 공급할 수도 있다.

이처럼 새 돈의 대부분을 무상환 무이자의 국민주권통화로 경제에 주입되고, 만약 이것으로 부족하다면 할인창구를 통해 추가로 공급할 수 있으므로 은행의 신용창조 기능이 사라지면 통화량이 부족해져 불황을 초래할 것이라는 우려는 근거가 없어질 것이다.

지금까지 화폐 민주주의에 입각한 통화 공급 시스템 개혁안의 개요를 제시했다. 당연한 일이지만 앞으로 현행 화폐금융 시스템의 문제점, 민주적 개혁의 필요성, 개혁의 좀 더 구체적인 청사진에 관한 세부사항을 하나씩 논의해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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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익진의 용어해설 - 1

돈의 이름들

그림 출처 : Pch.vector

‘돈’이 일상용어라면 ‘화폐(money)’ 또는 ‘통화(currency)’는 경제용어입니다. 이 세 단어는 정말 똑 같은 것을 지칭합니다. 화폐와 통화를 굳이 구별하자면, 대체로 문맥상 돈의 본성이나 기능 등 질적 측면을 얘기할 때는 화폐를 사용하고, 돈의 양적인 면과 관련될 때는 통화를 사용하는 정도의 차이랄까요. 예를 들어 화폐의 본성, 통화량 등이라는 표현에서 그러한 어감 차이가 느껴지나요? 하지만 화폐와 통화는 언제 어디서든 바꿔 써도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돈에는 정말 종류가 많습니다. “돈이면 다 똑 같은 돈이지, 돈의 종류라니?” 하고 반문하시는 분이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어쨌든 돈은 종류가 정말 다양하고, 어떤 기준으로 분류하느냐에 따라 이름도 다릅니다.

먼저, 돈의 형태를 볼까요. ‘물품화폐’(조가비, 쌀, 돌, 면포, 소금 등), ‘금속화폐’(금화, 은화, 동전 등), ‘지폐’, ‘전자화폐’(또는 ‘가상화폐’), ‘암호화폐’ 등을 들 수 있습니다. 돈은 역사적으로 방금 나열된 순서대로 형태를 바꾸어 왔습니다. 화폐 제조 기술의 발전에 따라 그 사용상의 편의가 증대되어왔다고 볼 수 있죠.

사실 돈이란 게 가치척도, 지불수단, 가치저장 등 그 기능의 수행만 잘 하면 되는 것이지 무엇으로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는 거의 중요하지 않은 시대가 되었죠. 이제 돈은 특정한 금액의 수치를 나타내는 단순한 증표(token)면 충분하게 된 것이죠. 그러다보니 최첨단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한 암호화폐까지 나왔죠. 비록 암호화폐가 진정한 돈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현재는 디지털 자산으로서 거래의 대상일 뿐이죠.

그리고 ‘태환화폐’니 ‘불환화폐’라는 이름도 들어보셨죠? 20세기 초반까지 금본위제 하에서 금과의 교환이 보장된 태환지폐가 사용되어 오다가 1929년 대공황에 대처하는 과정에서 대부분의 선진국은 1930년대 초반 경 불환지폐 제도로 이행했고,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가진 5만원 짜리 지폐는 불환지폐이죠.

또한 누가 만든 돈인가에 따라 ‘은행화폐’, ‘정부화폐’, ‘중앙은행화폐’(‘본원화폐’),, ‘지역화폐’, ‘공동체화폐’ 등으로 구분할 수 있어요. 역사적으로 보면 로마제국의 금화가 그 번영의 경제적 기초였다는 평가가 있구요. 미국의 링컨 대통령이 남북전쟁 시절에 전비를 조달하기 위해 한시적으로 발행했던 ‘그린백’(Greenback;뒷면이 녹색이라서 붙여진 이름)을 들 수 있습니다.

은행화폐의 역사도 만만치 않죠. 중세에 금세공업자나 국제적 대상인이 은행업을 영위하면서 화폐(주로 태환지폐)를 발행했죠. 영국의 경우 명예혁명 이후 은행 세력은 왕과 타협하여 왕이 보증하는 일종의 정부화폐를 발행하는 권한을 갖게 되었고, 곧 중앙은행으로 변신하기도 했구요. 지금은 개인이나 기업 즉 비 은행 민간주체는 돈의 발행이 금지되어 있고, 정부도 돈을 직접 발행하지 않고 중앙은행이 발행하도록 하고 있죠. 그런데 현행 시스템에는 중앙은행은 중앙은행화폐(본원화폐)를 아주 조금만 발행하고 나머지 돈은 시중은행으로 하여금 발행하고 있습니다.

현재 지역화폐와 공동체화폐도 존재하고는 있습니다만, 지역화폐는 특정 지역에서 주로 상품권 형태로 법정통화의 대용수단으로 사용되고 있어 독자적인 화폐로 보기는 어렵구요. 독자적인 명칭을 가진 공동체화폐는 사용자 수를 늘리기가 극히 어려워 극소수의 구성원 사이에서만 사용되고 있는 실정이죠.

이미지 출처 : https://lesfrancais.press/quelle-monnaie-pour-demain/

끝으로, 가장 중요한 것으로 돈에게 나름의 (사용)가치를 가진 모든 것을 살 수 있게 해주는 힘(즉 구매력)을 부여하는 원천이 무엇인가에 따라 ‘상품화폐’, ‘신용화폐’, ‘법정화폐’로 구별할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상품화폐인 금화나 태환지폐는 그 자체가 금이라는 효용(사용가치)을 가지고 있어 보편적인 지불수단이 될 수 있음은 쉽게 알 수 있죠.

그런데 불환지폐는 인쇄된 종이 쪼가리에 불과하고, 예금화폐는 컴퓨터 하드 속에 기록된 전자수치에 불과한데 어째서 이것으로 물건을 사고 빚을 갚고 세금을 내고 할 수 있는 것일까요? 한 가지 설명은 어떤 공동체의 구성원 전체가 어떤 것을 일반적인 지불수단인 돈으로 사용하자고 합의했다는 겁니다.

이러한 사회적 합의는 내가 어떤 상품(물건이나 서비스)을 팔고 그 대가로 다른 어떤 상품이 아니라 종이나 수치로 된 돈을 받는 까닭은 내가 이 돈으로 어떤 상품을 살 때 모든 판매자가 그 대가로 이 돈을 받아줄 것으로 ‘확신한다’는 믿음을 근거로 하죠. 신용화폐(fiduciary money 또는 credit money)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입니다. 사실상 오늘날의 사용중인 돈은 모두 신용화폐에 속합니다.

신용화폐는 누구나 이런 신뢰를 확보할 수만 있다면 만들 수 있죠. 그러나 한 나라 전체 구성원의 신뢰를 확보할 수 있는 것은 국가밖에 없죠. 국가는 강제 조세권을 바탕으로 자신이 발행한 신용통화를 세금 납부 수단으로 받아준다고 약속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민주국가에서는 왕의 물리력이 아니라 법률로 강제 통용력을 부여하는데, 이런 돈을 법정화폐(fiat money) 또는 주권화폐(sovereign money)라고 부르죠. 현재는 이 법정통화를 중앙은행과 은행이 발행하고 있다고 앞서 말한 바 있죠.

하지만 현행 시스템에서 은행은 돈을 창조하기는 하지만 자신만의 고유한 돈이 아니라 중앙은행의 승인을 받아 위탁발행하기 때문에 어느 시중은행이 발행한 은행통화든 본원통화와 형태상 같은 전자통화로서의 법정통화이죠. 아마 이 점 때문에 돈이면 다 같은 돈이지 무슨 차이가 있냐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이렇게 다양한 돈의 종류가 존재하지만 오늘날 우리(엄밀히는 비 은행 민간주체) 가 사용하는 돈은 형태상으로는 ‘현금화폐’(줄여서 현금)이라 불리는 (불환)지폐와 동전과 여러분의 은행 계좌에 들어 있는 전자화폐(전자 수치) 형태의 ‘예금화폐’ 두 가지밖에 없습니다.

여기서 꼭 알아두셔야 할 핵심은 중앙은행이라는 대표적인 공공은행이 정부와 은행 하고만 거래하며, 국민과는 어떤 거래 관계도 갖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한마디로 중앙은행은 공공은행이지만 국민과는 볼일이 전혀 없다는 거죠. 그렇다면 중앙은행은 시중은행을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인가? 그런데도 공공은행이라 할 수 있을까? 중앙은행의 존재이유가 뭔가 의심스럽다는 생각이 드신다면 이제 여러분은 화폐 민주주의라는 새로운 세상의 문을 두드리고 계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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