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집에 제출해야 하는 생활기록부 ▲2009년 개정된 유치원생활기록부 ▲1996년 제정된 유치원생활기록부
올 해 네살이 된 딸아이가 집 근처의 시립어린이집에 다니게 되었다.
새학기라 이것저것 제출할것이 있었는데 그 중에 '생활기록부'라는것이 눈에 띄었다.
아이의 간단한 인적사항이나 신체발달상황 등이 기재될 줄 알았는데, 의외로 적어야 하는 내용이 많았다.
무심코 적다가 부모학력을 적는 란이 나왔다.
아직도 이런것을 적어내나 조금 의아해 하며 나머지 문항들을 보니 눈을 의심할 질문들이 연이어 나왔다.
생활정도를 상,중,하,영세 중에 선택하고,
보육료 감면여부를 면제,경감,유료로 구분하고,
주거상태를 월세,전세,친척집,자택으로 구분하고,
자택은 다시 단독주택인지 아파트인지를 적도록 되어있었다.
여기에 방갯수까지 적으라니......
긴 한숨이 나왔다.
대체 이런것들이 아이를 잘 돌보는 것과 무슨 관계가 있나 싶은 생각과 함께 나처럼 언짢아 할 부모와 혹시라도 이로인해 상처받는 아이가 생기지나 않을까 하는 노파심에 마음이 무거웠다.
요즘은 네댓살이면 글을 깨치는 아이들이 태반이라 직접 읽을 수도 있고, 그렇지 않더라도 별 의미없지만 누군가에겐 상처가 될수있는 문항들로 채워놓은 어린이집의 무심함이 마음을 아프게했다.
이런 마음이 드는것은 아이들의 인권이나 인격이 별로 중시되지 않던 시절에 유년기를 보낸 나의 경험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
5공화국 출범과 함께 마산의 한'국민학교'를 다닌 나는 학년이 바뀔 때 마다 이뤄지는 가정환경 조사가 늘 달갑지 않았다.
교실에 학생들을 모아놓고 선생님이 부모의 학력을 '무학(無學)'부터 '대졸'까지 호명하며 손을 들게 했는데 어머니가 '국민학교' 밖에 안나와서 '국졸'에 손을 들어야 했지만 그 당시에는 그것이 너무 부끄러워 눈치만 보다가 '중졸'에 슬며시 손을 들곤 했다. 거짓말을 했다는 자책감에 얼굴이 붉어졌고, 부모 마저 부끄럽게 여기게 만드는 그 순간이 너무나 괴로웠다.
그때의 상처가 아직까지 남아있을 정도이니 예민한 아동에 대한 인권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두말할 필요가 없는 일이다.
어린이집에서 받아온 생활기록부의 출처가 어딘지 궁금해 관련 법규을 찾아보았다.
어린이집은 아니지만 '유치원의 생활기록부 관리지침'이 유아교육법에 고시로 지정되어 있었다.
다행이라고 해야할지 어디에도 부모의 직업이나 학력, 생활수준을 묻는 란이 없었다.
2009년에 개정된 법이라 혹시 큰 변화가 있었는지 1996년 제정당시의 지침을 찾아보았다.
부모의 직업을 적는 란이 있을 뿐 지금과 별로 다르지 않았다.
생활기록부에서 부모의 직업란을 없애는데 13년이 걸린셈이다.
결국 지침도 없던 시절에 만들어진 내용이 아무 고민없이 그대로 답습되고 있었던 것이다.
시대의 변화를 가장 먼저 알고 아이들을 올바르게 자라도록 돕는것은 교육자의 몫이자 권리이다.
하물며 아이들이 태어나서 최초로 만나는 보육 및 교육자인 어린이집 선생님들의 역할은 부모에 버금 갈 정도로 중요하다.
사소한 일이라 여기지말고 좀 더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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