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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한 건축가가 세상을 떠난 후 생각해 본 집의 의미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1. 3. 23.


지난 3월 11일 오전 건축가 정기용 선생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건축계에서는 대가의 반열에 오른 분이라 모르는 분이 없지만 일반인들에게는 낯선 이름일 겁니다.
하지만 진해에 있는 '기적의 도서관'의 설계자라고 하면 '아~' 하실겁니다.
역시 건축가는 이름도 얼굴도 아닌 그가 남긴 건축물로 기억되는가 봅니다.



'기적의 도서관'에 가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건물은 크지도 화려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내부에 들어가보면 물흐르듯 자연스러운 동선이나, 아기자기하고 다양한 공간은 아무곳에나 철퍼덕 앉아 책을 펼치고 싶은 맘이 절로 들게 합니다.   
도서관을 사용할 아이들의 입장에서 모든 시설들이 만들어졌습니다. 

그는 봉하마을 노무현대통령 사저를 비롯해, 2004년 베니스비엔날레 국제건축전에 한국관 설계를 맡았고, 부산 민주공원 등 굵직한 공공시설들을 설계하였으며, 생태건축이라는 용어도 낯선 시절부터 자연과 건축의 공존을 위한 다양한 시도를 해왔습니다.

근래에 진행된 '무주 프로젝트'는 정기용 선생의 철학이 잘 녹아있습니다.
전북 무주군과 함께 군청, 도서관, 운동장 등 공공건물을 '주민의 쓸모'를 원칙으로 사용할 사람의 필요에 따라 지었습니다. 

마을회관에는 노인들이 언제나 이용할 수 있는 목욕탕을 짓고, 무주공설운동장의 관람석은 등나무로 덮어 경기가 없더라도 주민들에게 시원한 그늘을 주었습니다.


그는 공공건축가로 불릴 정도로 많은 공공건물을 설계하고, 대형 프로젝트도 진행했지만 늘 가난한 건축가였습니다.

그의 설계를 필요로 하는 많은 공적인 시설을(이를테면 지역에 있는 이름없는 사회단체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계약관계'없이 흔쾌히 그려주었던것이 한 이유입니다.

그는 생전에,

"사유지 안에 세워지는 건축은 동시에 지구 위에 구축되는 건축임을 피할 수 없기 때문에 그 태생이 공공적이다."

라고 말할 정도로 건물의 공공성에 대해 중요하게 생각하였습니다.

참으로 공감가는 말입니다.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건물이 태생적으로  공공적이라면 그 쓰임도 공공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에게 집은 어떤 의미일까요?
가족과 정을 나누는 따뜻한 보금자리?
그저 재산증식의 수단?

집 한칸 없는 사람이 태반인데, 한사람이 수십채의 집을 가지고 있어도 아무 문제가 안됩니다.
100주 연속으로 전세값이 올라 전세대란이 와도 아무 문제가 안됩니다.
10평짜리 집을 싹밀어내고 4,50평 아파트를 지어도,
10평짜리 내집에 살던 사람이 변두리 셋방으로 쫓겨나도 아무 문제가 안됩니다.  

이러한 일들이 현재진행형이고 이로인해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고 있음에도 연예인 한명 군대가는것 보다 이슈가 되지 못합니다.
 

이 모든것이 집을 공적인 것으로 보지 않고, 개인의 사유재산으로만 바라보는 자본주의적 인식에서 나옵니다.

적어도 생존과 관련된'의식주'문제 만큼은 시장경제 논리에 맡겨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쌀은 국내에서 생산하는 원가 보다 훨씬 싸게 수입할 수 있습니다.
시장논리 대로라면 국내에서는 모두 쌀농사를 그만두고 수입해서 사먹는게 더 이익입니다.

하지만 보조금을 지급하면서까지 쌀농사를 포기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식량은 바로 생존과 관련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떠한 이유로 수입이 불가능해졌을때 대체할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똑같이 생존과 관련된 집 문제는 왜 시장논리에만 맡기는지 이해할수 없습니다.
집을 공적인 개념으로 바라보고 정책을 세우지 않는이상, 수백만채의 아파트를 지어도 아무소용이 없습니다.
가진사람이 더 가질뿐, 없는사람은 더욱 힘들어질 뿐입니다. 


흠모하던 건축선배의 죽음앞에 건축을 대하는 제 자신에 대한 반성과 함께 두서없는 넋두리를 하였습니다. 

삼가고인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