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산포와 신마산이 연결되다 - 중앙마산의 형성>
3) 각종 문헌에 나타나는 '중앙마산'의 철도용지
‘중앙마산’이라는 용어는 이 글에서 처음 사용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일제기에 간행된 마산관련 몇몇 자료에서「중앙마산(中央馬山)」혹은「중앙방면(中央方面)」「중앙부」라는 용어가 사용되었습니다.
이것은 이 지역이 신마산과 원마산의 두 영역에 포함되지 않으면서 두 지역 사이에 있는 다른 성격의 도시공간이라는 것을 말합니다.
여기서는 1920년대 일본인이 발간한 문헌에 나오는 '중앙마산' 관련 기록들을 모아 소개하겠습니다.
내용을 간추려 번역한 것이며 명칭은 현재 사용하는 용어로 고쳐 적습니다.
①『馬山港誌(마산항지, 1926)』- 諏方史郞(추방사랑)
a. 위치와 지세(p.3)
마산부의 대체적인 지세는 본래 마산포 즉 마산포 방면과 이전의 각국거류지 및 군영, 군 관사 소재의 신마산 방면, 그리고 그 중간인 철도용지 즉 중앙부 방면의 크게 세부분으로 성립된다.
그 중 마산포 방면은 한인(韓人)을 상대하는 상점이 많으며 미곡, 해산물의 집산지다. 신마산은 정비된 가로와 좋은 가옥이 많고 군인 관리를 상대로 하는 상점이 대부분이며 중앙부는 관아․학교․사원․철도소재지가 있기 때문에 그 곳 관계자의 주택이 많이 있은데 중앙부 중 일부 신마산에 접한 곳은 상황(商況)이 오히려 신마산을 능가하고 있다. 그렇지만 중앙부 대부분은 철도용지를 빌린 전답들이다.
마산부는 중앙부에 대한 도시 및 거리조영(造營) 계획을 지금 시행한다면 세 도시가 합쳐져서 하나의 대도시로 되는 것이 먼 장래의 일 만은 아닐 것이다.
b. 신․구마산의 공칭 (pp.91-92)
․․․․․․․․따라서 그 중간인 신월천에서 장군천을 통해 척산교(尺山橋)에 이르는 철도용지 내 시가를 중앙부라 칭하였고․․․․․․․
c. 중앙 방면 (pp.202-203)
중앙방면은 신마산의 동북경계인 신월천부터 동북으로 나아가 장군천(將軍河)을 건너서 마산포의 서남부분의 척산교(尺山橋)에 이르는 사이를 총칭하는 것이다․․․․․․․․․․․․․․․그 부근에서 번영하는 중앙동거리를 지나 거류지의 위쪽으로 나있는 대 가로를 따라 창원군청, 자혜병원, 경찰서, 고녀고(高女校, 마산여고의 전신인 마산고등여학교를 말함) 등이 큰 면적을 차지하고 있는 점은 상점가로서 번영하는 외관을 저해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이 방면의 중앙을 관통하는 하천을 장군천이라고 한다. 상류 장군교 북쪽 일대는 전중손(田中遜) 백작의 농사경영과 관련되어 있는 월포원의 식림지인데 고려말의 처사 장장군(張將軍)이 왜구와 싸우다 충성스런 전사를 한 명예를 기리기 위하여 하천의 이름을 그렇게 붙였고 장군은 월포원 내에 영면해 있다. 이 하천의 중앙동 지역에 놓여진 다리는 월포교라 하고 장군동에 놓여진 것은 장군교라 한다.
장군교 부근에서 옆으로 비스듬히 중앙동에 이르는 가로는 1906년 초겨울에 개통되어 당시 거류지인 마산포의 유일한 연락도로가 되었고 1910년에 마산, 진주간 일등도로가 마산 역전까지 개통을 보게 되면서 두 개의 길을 얻어 척산교에서 서로 만나 한 도로가 되어 마산포로 들어가게 되었다.
이 때까지 마산 역전에 높이 50척의 한 언덕이 있어 그 꼭대기에 정자를 지어 역무원들이 달을 보고 더위를 식히는 위안소가 되어 月見丘(월견구, 스키미오카)라고 불렀는데 아래 가장자리의 도로는 가끔 물에 잠겨 통행두절 상태가 되기도 했다. 마진도로개통과 함께 월견구도 평탄하게 깎아 도로로 만들었고 그 언덕자리는 현재 상반여관에서 丸二(환이, 마루니)운송점 창고가 있는 일대의 지역이다.
장군천 하류의 동쪽지역에는 1911년 5월 23일부터 전(全) 항구를 전기로 밝힌 일한와사전기회사의 후신인 경성전기회사 마산지점이 있었다․․․․․․․․
․․․․․․․․중앙방면, 반월동에서 부터 장군동의 전부 남측, 즉 중앙동, 월포동을 거쳐 해안에 이르기까지 인가의 유무를 불문하고 부설한 철도용지이며, 완월, 신월 두 개 동을 합하여 일본인 3백60호 1,500명, 한국인 약 750호 4,000명이 된다. 한마디로 말해서 당 방면을 평하자면․철도․은행과 회사․관리․교원들의 동네나 대서인(代書人), 변호사 및 은급자들이 거주하는 동네이며 사찰 동네가 될 것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대부분은 가옥건축을 허용한 철도용지의 전답으로서․․․․․․․
d. 신시가의 실현이 가까웠다 (pp.220-221)
마산부는 원래 신마산과 마산포와 중앙부 철도용지로 세 영역으로 크게 구분된다. 중앙부의 신마산에 가까운 방면 및 마산 역과 그 관사․마산소학교․마산고등여학교․마산자혜의원․창원군청․마산지방법원지청소재 부근 등 약 3분의 1로는 민가 가옥이 줄지어 있지만 중앙공설운동장 방면, 장군천과 월포교를 지나 척산교에 이르는 사이에는 광막한 철도용지가 자리 잡고 있어서 동서(東西) 마산은 모든 분야에서 다른 생활을 하였던 것이다.
그 때문에 발전상 종종 장애를 가져오고 있음으로 부(府)에서는 누누이 이를 부협의회(府協議會) 회원에 자문하여 이미 이 용지를 불하하여 시구에 대 개정을 실시하여 기본 조사를 마치고 총공사비108,471원65전을 계상(計上)하였다. 그 불용경지(不用耕地) 총면적 11,189평 9홉을 철도국에서 불하받아 이를 삭지성토(削地盛土)하여 도로 및 택지를 개설하였다.
그 신개(新開)도로의 연장 3,074칸5푼을 공제한 이외는 모두 택지로 구획하여 일반 공중에 매각하는 성산(成算)을 세우고 총독부에서 청원할 것이라고 전해져 그 실현이 먼 장래가 아니라 2-3년 이내라고 예상된다.
e. 마산민중의 소리 - 마산부청의 위치에 대하여 (pp.222-223)
마산부청은 정확히 마산의 중앙에 위치할 뿐만 아니라 이를 인간에 비유한다면 체구의 중앙에 있으며 각 장기와 신경기관 그 외 신체 전부를 활동시키는 최고기관의 심장이다. 그 기관인 부(府)가 서북 모퉁이에 위치한 것은 반드시 부치(府治)를 건전히 발달시키지 못하고 있다.
다수의 공무원이 이전을 원치 않는다 라고 해서 안 된다는 것은 치자(治者)의 생각인데 부민(府民)의 입장에서는 과연 어떠한지․․․․․․․․
공과의 체납도 이것 때문이며․․․․․․․․형무지소 소재는 옛날 논밭이었던 한가로운 지역이었지만 지금은 큰 가로에 접하여 상점이 즐비하고 크게 발한 지역이 되었다. 마산포 방면의 민중은 이것 또한 다른 곳에 이전하는 것을 희망한지 여러 년․․․․․․․․마산부청이 중앙으로 이전하면 신구(新舊)마산 사이의 감정도 스스로 융화될 것이 아닌가.
②『朝鮮と建築(조선과건축, 1929)』- 朝鮮建築會
a. 마산부청 신축과 공회당(3월호, p.39)
현 마산의 시가는 바다에 면한 무학산록 일대 완만한 경사면에 위치하고 있어 남북으로 길어 마치 띠의 모양을 하고 있다.
또한 마산부청의 위치는 남방 신마산의 구석에 치우쳐 있음과 동시에 약간 높은 언덕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서 시가지에서 멀리 떨어져 있고 특히 구마산 방면은 매우 불편을 느끼고 있다. 현 부청사는 메이지 41년 마산이사청 당시 신축된 콘크리트건물로서, 그 후 두 차례에 걸쳐 증축된 견고한 건물인 까닭에 아무리 부민의 절박한 희망이 있다고는 하나, 건축비로 10만 엔 내외가 필요하기에 즉각 해결할 문제는 아니나․․․․․․․․ 부청이전문제가 대두하여 그 위치를 중앙부에 선정한다는 것은 부민의 편리에는 이 이상 좋은 일은 없고 나아가 시가의 발전에도 커다란 이익이 있을 것이라․․․․․․․․
b. 마산우편국 개축에 착수(12월호, p.32)
경남 마산우편국은 전 영사관 옆의 건물인데, 현 청사는 협소하고 위치가 매우 치우쳐있기에 일반 민중의 불편이 적지 않고, 현재의 발전에 부응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으며, 개축 이전문제가 민중 사이에 소리 높여 제기되어 오랫동안 현안이 되어왔기에 우편당국 역시 이 점을 고려하여 이전 철도국 용지인 마산 역전의 공지를 빌려서 부지로 예상하고 그 곳으로 이전할 계획이다․․․․․․․․
c. 마산부 소유 주택지 매각(1931년 10월호, p.54)
마산부는 신마산과 원마산 사이에 있는 부(府) 소유지 약 5천 평을 이번에 매각하는데 희망자가 선택 시 그 편의를 고려, 30여 필지로 분할하여 오는 9월 30일 마산부청 재무계에서 경쟁 입찰에 붙인다.
마산은 남지교(南旨橋)의 공사가 착수된 것과 함께 최근에 중앙마산(금회 경매에 나온 부근 일대)의 해면 약 5만 평 매축공사도 착수할 것이라고 결정했다.
그렇기 때문에 동 지역은 상업적으로, 또 관공서거리로서도 마산의 중앙부를 형성하게 될 것으로서 그 급속한 발전을 예측하고 지방민뿐만 아니라 부산․대구․진주방면에서도 이 경매지에 관한 소개가 있어서 희망자가 많다.
③『馬山現勢錄(마산현세록, 1929)』- 長田 純(장전순)․高須瑪公(고수마공)
a. 중앙마산의 매축 정비 (p.156)
마산의 시가구(市街區) 구성은 종래 신구 양(兩) 마산으로 나뉘어져 있어서 자연스런 시가구(市街區)의 연결이 좋지 않았다. 마산 발전의 암과 같았던 중앙 마산의 경지(耕地, 철도용지)가 부에 불하되어 여러 가지 문제가 원만히 해결되었으며 그 결과 최근 더욱 더 시가지로서 모습을 갖추기에 이르렀다.
즉, 종래의 경전(京電)마산지점을 위시하여 도립마산의원, 부산법원마산지청은 이미 장려한 아름다움을 자랑하고 있으며 남선일보사, 부산일보사 등도 그 새로운 모습을 뽐내고, 마산부청과 공회당의 부지도 결정되어 머잖아 그 당당한 건축이 드러날 것으로 예상한다.
이 중앙마산시가구(中央馬山市街區) 구성과 관련해서는 뭐니뭐니해도 중앙마산 지선(地先)의 공유수면 매축사업을 간과할 수 없다․․․․본 사업의 완성은 더욱 마산항 발전의 기폭제를 이루는 것으로 많은 기대를 걸고 있다.
보신 것 처럼 여러 문헌에서 '중앙마산'에 대해 기록하고 있습니다.
다음 글에서는 이 기록을 통한 당시 중앙마산의 상황과 형성과정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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