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담 나누는 신년입니다만, 시간을 놓치면 문제가 더 커지겠다 싶어 포스팅합니다.
지난 연말 창원시청에서 2025도시기본계획 중간보고 성격의 간담회가 있었습니다. 균형발전협의회에 참여하고 있는 민간인 8-9명이 연구용역업체 전문가의 설명을 듣는 자리였습니다. 법적효력을 갖는 회의가 아닌 탓에 간단한 설명과 몇 마디 질의가 오간 느긋한 회의였습니다.
하지만 그날의 설명 속에는 정말 어이없는 내용이 들어 있었습니다.
무릇 한 도시의 기본계획은 장차 그 도시의 미래를 결정하는 방향타입니다. 기본계획의 성격과 방향에 따라 그 도시의 현재와 미래가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제가 ‘어이없다’라는 가혹한 언어를 사용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창원시2025도시기본계획의 예상인구추정 때문입니다.
이 계획서에는 현 110만 창원시 인구가 2025년에 150만 명으로 될 것이라 추정하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그 날 설명한 계획서에는 당연히 인구 150만 명에 필요한 용지와 도로 등 각종도시시설에 대한 구상이 들어 있었습니다.
이 계획을 보는 순간, 잊었던 기억들이 떠올랐습니다. 7-8년 전, 옛 마산시가 2016년 도시기본계획에 인구 70만을 예상해 뜻있는 시민들로부터 비웃음을 샀던 기억과 전국 지자체의 도시기본계획 총인구를 합치면 우리나라 인구가 7천만이 된다는 비아냥거림까지.
길게 말하지 않아도, 우리나라의 인구가 더 이상 늘지 않는다는 사실, 철든 국민이면 누구나 아는 이야깁니다. 거기다가 수도권 집중현상 때문에 지방 인구는 더 위협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 상식 중의 상식이 된지 오래입니다. 농촌에서 유입될 인구도 없어진지 이미 오래입니다.
통계청에서 밝힌 자료를 보아도 2030년까지는 전체 인구가 조금(3-4%) 늘겠지만 2030년부터는 완만하게 줄어든다고 되어 있습니다. 3-4% 늘어나는 것도 수도권 이야기일 뿐, 지방 인구는 더 이상 늘어나지 않을 것이라 전망하고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불과 12년 후에 인구가 35%나 늘어날 것으로 전망한 창원시 도시기본계획은 참으로 황당무계한 계획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혹 사람에 따라 “150만 명으로 잡으면 어떠냐? 인구가 늘어난다는 희망을 가져야 좋은 것 아니냐?” 라고 말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건 뭘 몰라도 한참 모르고 하는 말씀입니다.
2025년 인구150만 계획은 결코 계획으로만 끝나지 않습니다. 늘어날 인구 40만 명을 위한 도로와 주거용지, 산업용지, 공공용지를 공급하기위한 대규모 토목건설공사가 뒤따릅니다. 이 계획에 따라 통합창원시가 재편되는 겁니다. 계획규모가 크면 클수록 돈도 많이 들겠죠?
현대도시학에서는 지속가능한 도시발전과 인간중심의 도시환경에 가장 위협적인 것 으로 스프롤(sprawl), 즉 도시의 무계획적 확산을 꼽습니다.
도심 공동화, 무분별한 환경파괴, 대규모 토목공사 등으로 도시를 피폐화시킨 이 도시전염병은 현대의 수많은 도시를 망가뜨렸습니다. 창원시 2025도시기본계획의 문제점도 병으로 치면 이 병에 해당됩니다.
2025년에 인구가 150만이 될 것이라는 창원시 도시기본계획이 제 눈에 비치기는, 짜임새 있는 도시개발로 시민 삶의 질을 높이겠다는 의지를 포기하는 선언과 같았습니다. 환경수도, 친환경도시 등 그간 외쳤던 이 도시의 지향성을 부정하는 고백과 같았습니다. 나아가 도심이 공동화되고, 에너지 소비가 늘고, 거대한 토목공사로 세금이 탕진되고, 생태환경이 파괴될, 미래 이 도시의 예언과 같았습니다.
아직 늦지 않습니다. 창원시 2025도시기본계획, 즉각 고치야 됩니다. 있지도 않을 헛것을 쥐고 아무리 뛰어 가봐야 닿을 곳은 뻔합니다. 이런 식으로는 옳은 길 찾지 못합니다. 바로 보고 바로 가야 합니다. 지금이라도 사실에 기초한 실사구시의 계획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한 번 확정되면 고치기 힘든 것이 행정입니다. 확정되기 전에 고쳐야 합니다. 제가 참석한 그 회의가 의견수렴을 위한 간담회라도 했으니 고칠 기회가 아직 있을 겁니다.
그렇다면 2025년 인구 150만 명이라는 식의 ‘알고하는 거짓말’은 왜 하게 될까요? 통합창원시 뿐만 아니라 통합 전 창원 마산 진해도 이런 식이었고, 전국 대부분의 시군이 이런 식입니다. 왜 이런 일들이 계속 일어날까요?
‘알고하는 거짓말’은 ‘커지면 좋아질 것이다’라는 막연한 환상 때문입니다. 연구자, 행정가, 시민 모두 이 환상을 믿기 때문입니다. 커진다는 것은 양을, 좋아진다는 것은 질을 의미함에도 불구하고 도시의 양(확대)과 질(발전)의 차이를 구분하지 못하기 때문에 생긴 결과로, 이것이 문제의 본질입니다.
클수록(혹은 새것일수록) 좋을 것이라 믿는 이 망국병은 개발독재시대의 산물입니다. 한국도시들을 끝내 질곡으로 몰아넣을 수도 있는 아주 고약한 놈입니다. 거대토목건설공사에 막대한 돈을 퍼붓는 재정낭비도 이 병 때문인 경우가 많습니다. 반드시 치유해야할 사회적 질병입니다.
끝으로 한 말 덧붙입니다.
가장 좋은 도시정책은, 도시의 규모를 키우거나 새로운 시설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기왕 있는 것 중 나쁘고 불편한 것을 고치는 것입니다. 그것은 또한 앞서가는 도시들이 추구하는 이념이자 도시의 정의(正義)이기도 합니다.<<<
PS ; 제가 간담회장에서 인구추정의 부당성을 지적하자 용역업체 측에서 “내국인은 늘지 않겠지만 외국인들이 이주해올 수는 있다”는 즉답을 했습니다. 하지만 그 날 설명해 준 계획안에는 수십만 외국인을 배려한 도시시설은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그런 걸 보아 즉석에서 생각해낸 위기 회피용 답아닌가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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