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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 도시이야기

『마산과 진해만』(1911) 제2장 「진해만」 - 제10절 행암만(行巖灣)과 덕산리(德山里)

by 운무허정도 2024. 11. 18.

제10절 행암만(行巖灣)과 덕산리(德山里)

 

신시가지에서 약 일 리(1里)거리, 행암만(아래 사진은 현 행암만 전경)에 면한 덕산리는 가까운 장래에 상항으로서 상선 출입이 빈번해질 것이라는 예상 아래 이에 부수할 사업을 계획하는 자도 많다. 

 

현재 행암만에서 매축(埋築)에 종사하고 있는 오사카 세라 류조(瀨良隆三)의 철공소 신설지가 1,200평, 도쿄의 엔도 다모츠(遠藤保), 야마모토 가타로(山本嘉太郞) 두 사람의 800평, 도쿄 가네코 치호(金子千芳)의 우유 착취장 1,000평 등인데, 앞의 세라 씨는 꽤 넓은 주물공장을 설치해 군항은 물론 시내외의 모든 수요에 응하는 한편, 재목상 및 토공구용 철물상도 경영할 계획이라고 한다. 

또한 덕산리에는 세관감시원이 출장을 하고 있다. 올해 안에 감시서를 건설하게 될 것이다. 

어류판매소는 창설 이래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현동군항이 설치된 날에는 이미 대단한 성황을 이루게 되며 어획량도 점차 증가해 출자자 30명, 자금 1,500엔으로 상비(常備, 필요할 때에 쓸 수 있게 늘 갖추어 둠)한 어선은 내지인 소유가 20척, 한인 것이 10척이 있다. 

하루 어획고는 평균 100엔으로 중매인이 20명 있으며 때때로 마산에 내보내고 있다. 회조점(回漕店), 잡화상, 여관 등도 개업되어 거류민은 나날이 팽창세에 있다.<<< 끝

 

<마산과 진해만> 해제 - 이애옥

"일본 제국주의의 조선 침탈과 경영은 조선의 식민지화 과정과 그 궤를 같이한다고 볼 수 있다. 근대 창원지역을 대상으로 하는 일문 문헌자료를 번역하는 작업은 이 지역의 식민지화 전개과정을 살펴보는 데 필수적 과제일 것이다. 창원의 근대사 연구에 선결해야 할 작업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마산과 진해지역은 일본 제국주의의 영향을 이른 시기에 가장 직접적이고도 강력하게 받은 일본제국의 식민도시였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식민도시 건설 당시 일본인의 시각에 의해 기록된 문헌자료의 검색과 정리는 지역의 근대사 연구에 있어 더 이상 미루어 둘 수 없는 일임은 자명하다."                                                                       

                                                                                                                              -마산번창기 해제 中 -

<마산과 진해만>

<마산과 진해만>은 국립중앙도서관의 자료에 따르면 히라이 아야오(平井斌夫) 저, 발행처는 조선 마산의 하마다신문점(濱田新聞店)이며 발행 연도는 명치 44년(1911)이라고 소개되어 있다. 그러나 <마산과 진해만>의 영인본 294쪽의 발행 사항에는 히라이 아야오와 구누기 마사지(九貫政二)의 공동 저자로 기록되어 있어 2인 공동 집필자로 추정한다.

제1장 마산 부문에는 마산신사, 마산부청, 마산정차장(마산역), 마산우체국, 마산세관 등 관공서 사진과 6명의 인물 사진, 광고, 총설, 관공서, 농업, 임업, 목축업, 상업 (개설 및 각종 영업 곡류 수출업 및 백미상 외 28항), 공업, 수산업, 교통, 통신, 위생, 교육, 종교, 잡찬(雜纂)으로 구성되어 있다. 마산 부문은 책의 전체 쪽수 296쪽 중 마산의 광고를 포함하여 269쪽의 분량을 차지한다.

제2장 진해만 부문은 군항지 개관, 현동의 발전, 해군용지 대하(下) 및 시가지 경영, 건축 및 토목공사, 비봉, 사사노(笹野)공장, 다카스(高須)통조림합자회사, 목축, 교육과 종교, 행암만과 덕산리의 10개의 절로 구성되어 있다. 마산 부문이 책 전체 분량의 91%라면, 제2장 진해만 부문은 236쪽에서 263쪽까지의 27쪽 분량으로 전체 분량 중 9%에 불과하다.

군항지 개관에서 진해만의 생명은 군항지에 있다고 말하고 있으며, 해군용지 대하 및 시가지 경영에는 해군용지 대여 내규 및 대여 허가를 받은 명단이 적혀 있다. 또 현동 시가지의 도로와 동네 이름이 개정 발표되었다.

제4절 건축 및 토목공사에는 임시건축지부에서 착수하고 있는 공사 명칭과 도급인의 성명, 벽돌과 목재 판매인을 소개하고 있다. 동일 인물들의 이름도 제법 보인다. 그리고 군항 경영상 제공사비의 올해 할당분인 56만 엔도 소개하고 있다.

제5절에서는 군항의 관문이며 부두가 있는 비봉 지역을 간단히 소개하면서 주요한 거류자의 명단과 직업, 호수, 남녀 인구도 언급하고 있다.

제6절과 제7절에는 해군의 저장 식료품(통조림) 제조 회사 두 곳을 인부 숫자를 포함한 하루 최대 공급 통조림 숫자까지 나와 있다.

제8절과 제9절에는 목축, 교육과 종교가 언급되어 있는데 특히 교육부분에는 진해공립심상고등학교(현 도천초등학교)가 개교전이라 작은 증기선으로 마산에 통학하고 있는 아이들의 어려움을 언급하면서 곧 개교하는 소식도 담고 있다.

마지막 제10절 행암만과 덕산리에서는 가까운 장래 덕산리가 상항(商港)으로서의 발전을 기대하는 내용이 나와 있다.

스기야마 만타의 <진해>는 <마산과 진해만>이 발행된 그 다음 해 발행된 책이므로, 책의 목차와 구성, 형태면에서 비슷한 점이 많은 것 같다. 그러나 진해에 관한 자료로서 <진해>와 <진해요람>보다 앞서 나온 출판물인 만큼 진해 관련 부분은 세심하게 살펴보아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이 글은 2022년 창원시정연구원이 1910년대와 20년대 진해의 모습을 담은 세 권의 책을 번역하여 하나로 묶어 낸 지역사발굴연구 교양총서 3권 『근대 문헌 속 진해』 중 10번 째(마지막) 것으로 『마산과 진해만』의 2장 ‘진해만’ 부분이다. 1911년 출간되었으며 저자는 히라이 아야오(平井斌夫)와 구누기 마사지(九貫政二)이다. 본 포스팅은 비영리를 전제로 창원시정연구원의 양해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