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절 사사노공장(笹野工場)
사사노 진시로 씨는 제국해군이 필요로 하는 소고기, 생선고기 통조림 수백만 개 중 그 절반을 충당하는 일대세력가다.
그는 본점을 도쿄 후쿠가와 모토마치에 두고 명치 41년(1908)부터 진해만 일대의 장래성에 착목해, 거점을 군항의 관문인 비봉에 정해 기간지(旣墾地, 이미 개간하여 놓은 땅을 이르는 말) 45정보(町, 1정보는 9,917.35537㎡로 45정보는 446.280.99165㎡에 해당되므로 135,000평을 말함. 한 평은 약 3.3m²) 남짓 그리고 미간지 137만여 평을 부근 12개 동에 걸쳐 조차했다.
또한 재작년 명치 42년(1909) 7월부터 제반 설비를 비롯하여 택지 2,093평에 36동, 총건평 1,044평의 건축을 완료했다.
목축, 통조림, 정미농업, 염업을 기획해 별도로 해군 저장식료품 납부를 하고 있으며 이제는 그 업무도 활발하게 되어 바로 웅비하려는 태세에 있는 바, 그 모습을 소개하는 것도 결코 무용지물이 아님을 믿는다.
면적 70여 정보인 부도(釜嶋) 및 25여 정보 남짓인 비봉에는 우사(牛舍), 목사(牧舍), 농부의 숙소를 설치해 개량한 수컷, 암컷의 소를 방목해 이미 송아지 16마리를 생산했다.
한발 더 나아가 남한의 축우에 일대개량을 가할 임무와 포부를 가지는 듯하다. 목장에 뿌린 목초 씨 중에서 <루우상>의 생육이 잘 된다고 한다.
다섯 군데 농장 137,000평에는 두 명의 내지인과 5~6명 내지 14~15명 한인농부를 상시 고용해 보리, 귀리, 콩 등 각종 채소류를 경작해 성과가 좋은 편이며 미곡 경작까지 하게 되면 마치 일대농장이 될 것 같다.
통조림은 주요한 업무이며 172평의 공장에는 35만 마력인 코르낫슈식('영국 콘월 지방(특유) 식'이라는 의미로 추정됨) 기관(機關)을 갖추며 작년도에는 소고기 15,000 관(貫, 1관은 3.75킬로그램을 말함)과 올해 시험적으로 고등어 16,000 마리 통조림을 제출(製出, 만들어서 냄)했다.
그 능력을 총 가동하게 되면 하루에 능히 60 마리의 소고기와 어육 천관(千貫)의 통조림을 생산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추는 동시에 쌀 175석의 탈곡과 보리 50석을 제분화할 수 있는 여력을 가지고 있다니 근사하기 짝이 없다.
어업은 부근 연안에서 멸치잡이를 주로 하며 히로시마현(広島県)에서 불러온 48명의 어부들에 의해 5월부터 10월에 이르는 반기(半期)의 어획고는 4만 관에 이른다고 한다.
제염은 오카야마현(岡山県)의 아코(赤穂)식을 채용해 진덕 7,600평, 덕산 4,300평의 염전에서 1년에 48만 근의 제염을 얻을 수가 있다.
한 가마 당 80근으로 소매 1엔 15전이란 가격은 내지 관염(官塩, 예전에 관청에서 제조하고 판매하거나 관청의 허가를 얻어 제조하여 판매하던 소금을 일컫는 말) 3등염(1등염은 하얗고 굵은 소금, 2등염은 토판에서 생산한 흰 소금, 3등염은 토관에서 생산은 되었는데 약간 검은 기가 있는 소금을 가리킴)에 맞먹는 것이라 한다.
만근을 끓이는 데에 필요한 숯 값 30엔도 들어가지 않는다고 한다. 저장 식료품 납부는 1년에 2만 엔에 조금 못 미치지만 장차 증액되어 수십 만 엔에 도달할지 모른다고 하니 그 얼마나 위대한 규모인가.
이상 사업에 투자된 총액은 약 13만 엔이며 1기 7년에 걸친 경영계획이라는 것을 개괄해 아래 표에다 나타내면 그 계획이 각 분야마다 얼마나 치밀하게 준비된 것인가를 알 수가 있다.
현재 고용하고 있는 인부 숫자는 총 180여 명에 도달하고 있다.
총 건물 평수 1,044평 4홉 5작
내역
명칭 건평 동수
사무소 79.50평 2
제조공장 172.00평 1
창고 189.95평 4
우사 118.00평 5
목부사(牧夫舍) 12.50평 1
농부사 67.50평 5
제염사 94.00평 4
어업사 63.00평 4
점원주택 48.75평 3
직공주택과 세집 292.50평 5
선박표
운반용 석유발동기 1척
어업용 대소선(大小) 7척
운반용 보조선 2척
설비한 제조력 예정표
식염 하루 제조력 1,300관
정미 하루 제조력 175석
보리탈곡 및 제분 동 동 50석
소고기통조림 동 60마리
어육(魚肉)통조림 동 1,000관
미개간지 1만평 5엔, 논평당 1전3리, 염전 2전 3리, 밭 7리<<<
이 글은 2022년 창원시정연구원이 1910년대와 20년대 진해의 모습을 담은 세 권의 책을 번역하여 하나로 묶어 낸 지역사발굴연구 교양총서 3권 『근대 문헌 속 진해』 중 6번 째 것으로 『마산과 진해만』의 2장 ‘진해만’ 부분이다. 1911년 출간되었으며 저자는 히라이 아야오(平井斌夫)와 구누기 마사지(九貫政二)이다. 본 포스팅은 비영리를 전제로 창원시정연구원의 양해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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