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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100산-35 ; 경남 창원 백월산(白月山)

by 운무허정도 2022. 8. 15.

학봉산악회 창원 백월산 산행기

 

-2022년 8월 13일(토) 창원시 북면 백월산

-참가회원 5명 : 서익진·정규식·신삼호·손상락(글쓴이)·허정도 / 신성기·임상후 두 회원은 용강포레에서 합류

 

학봉산악회 국내 10대 명산 탐방을 위해 거대한 꿈을 머금고 10여년 전 시작했다. 산림청에서 고시하는 100대 명산이 그 주요 대상이다.

세월이 흐름에 따라 대원의 체력이 노쇠해지고, 이름있는 100대 명산의 기준은 점차 허물어져 해발 500m 이하도 자의적 기준에 따라 100대 명산으로 둔갑하는 상황을 자초했다. 각산 높이 410m가 100대 명산에 등극하여 새로운 기준을 갖게 되었다.

이번 주는 창원시 북면에 있는 백월산(428m)을 탐방하기로 했다. 이는 백월산 자체를 탐방하기 위해서보다는 백월산 탐방후 동읍에 있는 한 회원의 “용강포레밀키”에 가기 위해서다.

 

백월산에는 믿기 어려운 전설이 얽혀 있다. 전설인즉 백월산은 해발 428m의 낮은 산으로 정상에 커다란 바위 3개가 있어 일명 산삼이라고도 불린다. 산삼바위 동쪽 끝 봉우리에는 커다란 바위 하나가 사자의 형상을 하고 있다 하여 그 바위를 사자바위라고 불리고 있다.

옛날 중국 당나라 황제가 황국 안에 아름다운 연못을 만들었는데, 휘영청 밝은 밤에 황제가 연못을 거닐다 연못 속에 비치는 풍경을 보게 되었다. 사자처럼 생긴 바위산이 연꽃 사이로 보이는데, 그 산봉우리가 기이하게 빼어났다.

황제는 연못 속의 산을 찾으려 했지만 찾을 수 없어 화공에게 산을 그리게 하고, 신하로 하여금 산을 찾도록 하였다. 산을 찾다가 우리 고장 창원에 이르러 그림과 똑같은 산을 찾을 수 있었다. 신하는 바위산 정상에 신발 한 짝을 얹어 놓고 돌아갔다는 전설이 얽힌 산이다.

이런 전설과 달리 사실 백월산은 『삼국유사(三國遺事)』기록에 나오는 것으로 유명하다. 다음은 그내용이다.

백월산 부근에 살던 노힐부득과 달달박박은 중이 되어 처자를 데리고 살았다. 연화장 세계에 노니는 부처가 되기를 염원하던 차에 금빛 팔이 이마를 쓰다듬는 꿈을 꾸고 함께 산속으로 들어갔다.

달달박박은 북쪽 고개의 판방(板房)에서 미타불을, 노힐부득은 동쪽 고개의 뇌방(磊房)에서 미륵불을 간구하였다.

3년쯤 되었을 때, 스무 살 정도의 아름다운 여인이 북쪽 암자에 이르러 ‘노여워 마시고 하룻밤 재워 달라.’라는 사(詞)를 지었다. 달달박박은 청정한 곳을 범하지 말라면서 거절하였다.

여인은 남쪽 암자에 가서 ‘길을 인도하고자 한다.’라는 게(偈)를 짓고 숙박을 청하였다. 노힐부득은 중생의 사정에 따르는 것도 보살행이라고 생각하여 들어오게 하고 자신은 밤새 염불을 외웠다.

날이 샐 즈음, 산기(産氣)가 있다면서 여인은 자리를 깔아 달라고 하였다. 또 출산한 다음에 목욕을 시켜 달라고 하였다. 노힐부득이 부끄럼을 무릅쓰고 요청을 다 들어 주었더니, 문득 욕조의 물이 금빛으로 변했다. 여인은 노힐부득에게 욕조에 목욕하고 연화대에 앉으라고 권하고 자신은 관음보살이라 하고는 사라졌다.

달달박박은 노힐부득이 계율을 범했으리라 짐작하고 가 보니 성불해 있었다. 그리된 내력을 듣고 자기도 이끌어 달라고 부탁하여 욕조에 목욕하였다.

그리하여 두 존사가 성불하니 소문을 듣고 온 사람들에게 설법하고 구름을 타고 떠나갔다.

후에 경덕왕이 절을 세우게 하고 미륵불과 미타불을 안치했는데 미타불은 도금하는 액체가 부족하여 얼룩이 남게 되었다.

창원의 백월산(白月山)에서 수도하던 두 사람이 성불한 것은 경룡(景龍) 3년인 709년(성덕왕 8)이었다. 이를 기려 천보(天寶) 14년인 755년(경덕왕 14)에 왕이 절을 세우도록 하여 광덕(廣德) 2년인 764년에 백월산남사(白月山南寺)를 완성했다고 전한다.

이 설화는 친구 사이인 두 사람이 함께 서원을 이루는 『삼국유사(三國遺事)』의 이성(二聖) 이야기 중 하나인데, 관음사상을 배경으로 미륵, 미타 신앙이 나타나 있다. 여인이 지은 사와 게가 이야기 전개상 중요한 역할을 한다. 여인을 대한 태도에서 두 인물은 나름의 근거를 대었지만, 중생의 소원에 따라 응해 주는 일을 실천한 노힐부득이 더욱 높이 받들어졌다.

 

우리는 이런 전설의 자태를 확인하기 위해 10시까지 북면 월백리 월백교회에 집결해서 산행을 하기로 하고, 대원 5명이 시간에 맞게 모두가 10시에 월백교회 앞에 나타났다.

월백산은 3개의 산행코스(6.2㎞, 5.6㎞, 4.5㎞)가 있는데, 평균연령을 고려해서 가장 짧은 코스를 선택해서 10시 5분 경에 출발해서 산행을 시작했다. 초입부에는 임도와 같은 길이 있었으나.

등산객이 다니는 흔적이 거의 없다. 오늘은 최근 폭염에 바람 한 점 없는 정말 고요한 날씨에 무척 습하기도 하다. 정상까지는 그리 멀지 않고 높지 않는 산임에도 불구하고 날씨가 무더워 정상을 가면서 다섯번이나 쉬어가는 고행을 했다.

 

 

능선이나 정상에 오르면 바람이 불려나 기대를 했지만 바람 한 점 없다. 날씨가 정말 무덥다. 이 때 흐르는 땀을 어른들은 “콩죽같은 땀이 흐른다”고 했다.

산행을 출발해서 약 1시간 30분 걸려 정상에 올랐다. 평소에 비해 거의 두배의 시간이 걸렸다. 정상에 가니 바위가 있긴 했는데, 전설로 전해지는 바위가 맞긴 맞는가 싶을 정도로 잘 인식되지 않았다. 그냥 어느 산에나 있는 정상의 바위로 인식될 뿐이었다.

정상(428m) 전의 한 봉우리에는 정자를 만들어 놓았다. 대원들은 무더운 날씨에 허리를 펴기 위해 배낭을 풀어놓고 잠시의 휴식을 취했다. 처음으로 산 정상에서 달달한 스테미나 케익을 먹으며 환담을 했다.

 

12시 10분에 정상을 출발해서 남사 사찰이 있는 방향으로 하산길을 탔다. 오르는 길에 비해 하산길은 거의 사람들이 다니지 않은지 발자국이 거의 없고, 길은 있으되 길이 없는 듯한 산행길을 곧장 내려와 남사 절에 도착하니 12시 50분으로 하산은 40분에 끝났다.

대원 중 한명은 오후 일정이 있어서 바로 창원으로 가고, 나머지 일행은 북면 고개 근처에 있는 산수정에 가서 오리탕으로 소진된 에너지를 보충했다.

시원한 인공 냉방에 뜨거운 오리탕을 먹으니 그게 또한 시원했다. 이 더운 여름에 뜨거운 탕을 먹는데 시원하다. 아이러니하다.

이렇게 점심을 해결한 후 우리는 당초 백월산을 선택한 목적이기도 한 “용강포래밀키”에 가서 맛있는 커피와 빵으로 용강포레밀키의 장소성을 음미했다.

 

잘 정리해서 2022년 창원시 건축대상제에 출품할 것을 권장하고 싶다. 이 또한 용강포레밀키의 홍보를 위한 한 방법이 될지도....!

잘 가꾸어 시민들의 힐링장소로 각인되어 많은 사람이 찾아와 대박나기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