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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도시이야기

통제영 청남루 디지털복원 재고해야

by 운무허정도 2023. 3. 30.

이 글은 3월 29일 경남도민일보에 게재된 것이다.

 

지켜야 했던 많은 것이 사라졌다. 남았다면 자랑스러웠을 수많은 문화유산이 없어졌다. 일제강점기와 전쟁, 도시개발이 주범이었다. 경제가 좋아지고 사회가 안정되어 정신을 차려보니 이미 때는 늦었다. 경남만 해도 창원읍성과 진주객사, 근대기 밀양세무서 등 없어진 것들이 손에 꼽을 수도 없을 만큼 많다.

 

통영은 역사문화유산이 많은 도시다. 그중 압권은 뭐니 뭐니 해도 삼도수군통제영 유적이다. 국보 세병관과 동피랑·서피랑, 이름만 들어도 모르는 사람이 없다. 통제영 유적 중에도 사라진 것들이 많다. 통제영 정문이었던 청남루가 대표적이다. '통영 남문'이라고도 했던 통제영의 얼굴이었다. 강점기 내내 보통학교로 사용된 세병관은 수모를 겪은 대신 살아남았지만, 청남루는 1915년 통영성곽을 허물 때 함께 헐렸다. 남아 있었다면 국보급 문화재였을 거라 안타깝고, 그런 만큼 더 보고 싶다.

2010년 정부는 삼도수군통제영의 역사적 가치를 인정해 지원금 180억 원을 편성했다. 그때부터 통제영 복원 사업은 차곡차곡 추진되었다. 이윽고 2015년에는 유적 발굴에 나선 문화재청이 청남루 기초석을 비롯한 유구들을 찾아냈고 복원 설계까지 마쳤다. 복원에 필요한 토지도 54필지 중 52필지, 총 96.2%까지 사들였다. 하지만 남은 땅 매입에 차질이 생겨 시간을 끌었고, 급기야 올해 안에 집행 못 한 예산은 반납해야 하는 상황까지 왔다.

이런 시점에 새로운 문제가 불거졌다. 청남루를 디지털로 복원한다는 통영시 입장 때문이다. 청남루가 섰던 자리에 빛을 쏘아 밤에만 그 모습을 보여주는, 형체 없는 복원을 하겠다는 의미다. 그러자 전문가들 반대가 쏟아졌다. 유적 홍보나 이벤트를 위해 디지털이 필요하기도 하지만 그것이 원형을 대신할 수는 없다는 주장이다.

통영시 입장도 일견 이해는 된다. 더 사들여야 할 토지 문제도 있고, 이미 내려온 돈이니 돌려주고 싶지 않은 속마음도 알 만하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기 바란다. 국고를 사용하고자 생명력 없는 디지털로 청남루를 복원하는 것은 옳지 않다. 통영시가 진정 백년대계를 생각한다면, 조금 늦더라도, 지난하더라도, 설령 단체장 임기 중에 끝나지 않더라도 위엄 갖춘 청남루 원형을 국민 앞에 내놓는 것이 맞다.

가상공간도 현대건축의 한 유형이긴 하다. 하지만 아무리 훌륭한 가상공간도 그것이 추위와 비바람을 막아주지는 못한다. 그것은 가상(假像)일 뿐이다. 광선으로 복원된 청남루에서 삼도수군통제영의 수백 년 시간을 느낄 수는 없다. 청남루를 드나든 통영사람들 흔적을 느낄 수도 없고, 충청·전라·경상도의 바다를 호령했던 그 당당한 위엄에 공감될 수도 없다. 그것은 만질 수도 기댈 수도 없는 단지 허공 속 광선일 뿐이다.

통영은 남다른 경쟁력을 가진 도시다. 문화예술이 그렇고 역사적 유산도 그렇다. 자연조건은 말할 것도 없다. 통영이 가진 이 경쟁력이 백분 발휘되기 바란다. 그래서 한국의 작은 도시 통영이 포르투갈 포르투처럼 사람 살기 좋고 문화예술이 흘러넘치는 도시가 되기 바란다. 그래서 권한다. 마침 나머지 땅주인도 최근 매각의사를 밝혔다고 한다. 조금 더 늦더라도 청남루는 원형으로 복원하기 바란다. 형체 없는 청남루 때문에 삼도수군통제영과 국보 세병관까지 가벼워질 수도 있다. 역사는 한낱 광선으로 복원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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