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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 도시이야기

마산항지(1926년) - 57 - 건권(乾卷) / 제8장 거류민단 시대사요(時代史要)

by 운무허정도 2023. 7. 24.

32. 구마산역 개업 축하연

마산선 구마산역의 개업 축하연이 열린 것은 명치 43년(1910)년 7월 1일이었다.

신마산 방면의 관민 저명인사 60여 명에 대해 마산역과 구마산역 사이의 무료승차권을 동봉한 초대장을 발송하고 마산포 방면의 일한 관민 300여 명을 초대했다.

원래 본 역이 낙성한 것은 6월 2일이며 당시에는 마산성지(城址) 유적이 남쪽에 있었기에 이 역을 성남역이라 했는데, 지방 민중들이 구마산을 몰각했다고 주장하여 청원운동을 한 결과 마침내 구마산역이란 명칭을 얻게 되었다.

그런데 오늘에 와서는 구(舊) 자를 트집 잡아 스스로 동마산이라 속칭하는 이도 나왔다고 하니 생각이 진화한 증표가 아닌가 싶다.

축하연은 역사(驛舍)와 동성교(東城橋) 사이에서 열렸으며 일한(日韓) 예기들의 춤과 일본식 사자춤도 나오고 하여 아주 성황이었다 한다.

(1936년 다시 건축한 구마산 역)

 

33. 일한병합과 마산부의 설치

융희황제가 한국의 전도(全圖) 1만4천 리 속의 유상무상(有象無象)을 모두 대일본제국에 병합시킨 것이 실은 명치 43년(1910) 8월 29일이었다.

이와 함께 한국통감 제도를 철폐하고 총독부제를 공포하고 한국을 조선이라 개호하여 전 황제에 작위하기를 덕수궁 이태왕(李太王), 황제를 창덕궁 이왕(李王), 황태자를 왕세자로 하고 황후를 왕비라 하며 일본 황족과 같은 예의로 대할 것이라 하여 전하란 경칭을 사용하도록 했다.

왕실경비로 연간 일금 150만 원을 총독부 특별회계에서 지출하기로 했다. 또한 왕실의 친척이 되는 이강, 이희 두 분 대군을 특별 대우하여 공작으로 하고 각각 84만 원의 은사공채(恩賜公債)를 교부하였다.

이왕의 혈족 및 공로자 76명에게 작위를 세습케 하고 구관리 3천645명에 대해서 679만 원의 은사금을 배분토록 하고 양반과 유림의 기로(耆老)들 9천811명에게 경로의 은전을 주며 효자, 수절부인, 홀아비, 홀어미, 고아와 자식 없는 기타 등에게 은사금이 주어졌다.

한국의 정객 혹은 지사라 칭하는 자 중에는 병합에 대해 적극적으로 반대하는 자도 적지 않아 그 때문에 혈서를 남기고 자살하는 사건도 있었으나 극적인 사태까지는 가지 않았다.

1천2백만의 민중은 모두 일시동인(一視同仁)의 제국신민이 되었다. 우리 마산지방에서는 아무런 반대의 영향을 받지 않았고 거의 나하고는 상관없다는 태도였으니 이 점은 약간은 아니지 않느냐는 감도 떨칠 수가 없었다.

이때 마산이사청은 폐지되고 새로이 마산부로 설치되어 미마스 이사관은 새로이 마산부윤으로 임명된다.

그 관할은 이전의 창원군, 진해현, 웅천현의 3군을 합친 창원부 내의 일원으로 이사청 시대의 관할은 마산부 관할에 비하면 약 20분의 1의 면적에도 미치지 못했던 것이다.<<<

 

이 글은 창원시정연구원이 2021년에 번역한 『馬山港誌』(1926) 중 57번 째 것이다. 그림은 별도로 삽입하였다. 『馬山港誌』는 1900년대에 발간된 일본 문헌 중 가장 가치가 높은 책으로 평가 받고 있다. 저자는 앞서 게재한 『馬山繁昌記』와 같은 스와 시로(諏方史郞)이다. 본 포스팅은 비영리를 전제로 창원시정연구원의 양해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