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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 도시이야기

마산항지(1926년) - 56 - 건권(乾卷) / 제8장 거류민단 시대사요(時代史要)

by 운무허정도 2023. 7. 17.

31. 마산포의 시구(市區) 개정 문제

 

전항에서 서술한 대로 백병전으로 치러진 선거전이라 그 당선의원으로 구성된 민회는 초장부터 평화적이지는 못했다.왜냐하면 마산포의 시구개정이란 중차대한 문제가 회의장의 쟁점이 되었기 때문이다.

직접 이해관계가 있는 마산포 의원과 그렇지 않은 의원 간에는 도저히 일치된 보조를 취할 수가 없으니 말이다.

원래 마산포의 가로는 명치 40년(1907) 중 당시의 경찰서장 사카이 요시아키(境喜明) 경부가 그 간선도로라 해야 할 한 부분에 대해 창원부윤과 협상해 좁은 길을 조금만 확장해 그 구부러진 데가 심한 곳은 임의로 집을 헐고 기부케 하고 길가에 작은 도랑을 판 정도로 노폭은 2칸 내외 밖에 되지 않았다.

후임 서장인 미야가와 다케유키(宮川武行) 경시는 한 걸음 앞으로 나가 창원부윤 식석린과 마에다 민장의 찬동을 얻어 길가의 일인, 한인과 상의해 가옥의 소요부를 임의로 해제하여 도로에 기부하도록 해 고저를 조금 완화시키고 작은 도랑을 양측에 파고 다소 분뇨 냄새를 막을 수는 있었다.

현재 사이와이마치(幸町)와 고토부키마치(壽町) 사이를 해안을 향해 비스듬히 내려가는 길을 이때 처음으로 개통한 것이다.

그럼에도 원래 여섯 동네로 구성되는 마산포는 의연히 옛 모습을 고칠 수가 없었다.

 

시구의 개정은 오래된 과제인지라 민단에서는 종래의 고식적인 개량과 수정을 비추어서 이번에는 아주 크게 고치려고 13개 선로를 제도, 설계하여 예산을 편성하였으며 그리하고 난 뒤 막대한 경비 지출은 민의에 부합하는지, 개정노선이 그 타당성을 잃지나 않은 건지 등을 민회에 자문했다.

시구 개정은 민회에서 만장일치로 찬동 받았지만 노선에 관해서는 모모토안, 나츠메안, 기타 수정안이 나와 토의는 몇 번이고 개폐회를 거듭했다.

이것은 의결함에는 마산포 의원 수가 전체 16명 중 7명이기 때문에 평온하게 통과하려면 거류지 전체적인 개정을 본위로 한다는 원안에 귀착해야 함은 당연한 것이다.

그래도 신마산 의원 후지사키(藤崎) 의장은 병 때문에 히로시 씨가 의장 대행을 하고 토의자는 양쪽 7명씩이 되었다. 개회 당일 한 편에서 한 사람이라도 빠지게 되면 다수결로 결론이 나와 버리니 한 편이 다 출석하면 다른 한 편이 다 퇴장하고 다른 쪽이 전원 나와도 한쪽이 퇴장하고 해서 서로의 결원만을 살피는 식으로 과반수에 도달하지 못한 기간이 몇 개월이나 계속된 것이다.

이 지경에 이르러 미마스 이사관, 마에다 민장은 양쪽을 알선하여 조정을 꾀하고 그 결과 다소 원안에 가까운 협정 안이 편성되어 양쪽 의원이 오랜만에 회합을 개최하였다.

그러나 한 번 악화된 서로의 감정은 사그라들지 않았고 그 다음해 마침내 결의에 이르려는 당일에도 미마스 이사관과 부하직원 1인, 야스다 경찰서장 외 경부 1인의 입회하에 회의가 개최되었지만 회의장에는 온화한 분위기는 모두 가시고 서로 대결의 자세가 강해 서로 간에 냉소하고, 욕도 하고 격화된 목소리가 왕래하는 등 폭력이 나올까 할 정도로 진면목은 없어지고 말았다.

마산포 가로를 확대하고 보기 좋게 한다는 마음은 서로 같은데 그 구체적인 방법에서의 차이가 이렇듯 꼬이게 한 것이라 하겠다.

당일에는 결론이 나지 않아 이후의 처치에 관해서는 당국에 일임하기로 하고 폐회하게 되었다.<<<

 

이 글은 창원시정연구원이 2021년에 번역한 『馬山港誌』(1926) 중 56번 째 것이다. 그림은 별도로 삽입하였다. 『馬山港誌』는 1900년대에 발간된 일본 문헌 중 가장 가치가 높은 책으로 평가 받고 있다. 저자는 앞서 게재한 『馬山繁昌記』와 같은 스와 시로(諏方史郞)이다. 본 포스팅은 비영리를 전제로 창원시정연구원의 양해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