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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 도시이야기

마산항지(1926년) - 62 - 곤권(坤卷) / 제2장 교육 기관

by 운무허정도 2023. 8. 28.

제2장 교육기관

 

1. 공립마산심상고등소학교

토오리마치(通町) 1정목에 있다. 명치 37(1904) 16일 공립마산심상소학교로서 현재의 하마마치(濱町) 3정목의 신교사에서 개교식을 열었다.

정토종 개교사 미스미다 지몬(三隅田持門) 스님이 사설한 마산포 일본인소학교를 병합시켜 사가현(佐賀縣) 사범학교 출신인 오가타 치요사부로(緖方千代三郞) 씨를 교장 겸 훈도로 초빙하여 그해 66일 해외소학교의 승인을 받았다.

 

거류민단제 시행시에 고등과를 병치하여 오카타 훈도를 구마산 분교 주임으로 보내고 사가 현 사범교 부속 소학교장인 나카지마 데이지로(中島訂治郞) 씨를 본교 교장으로 초빙, 훈도 다케시타 아키라(竹下智), 훈도 무라이 아이(村井あい) 두 사람과 함께 교편을 잡게 했다.

나카지마 교장이 인천으로 전근한 후, 교장은 교토쿠 아키오사(行德曄受), 에가미 나오하루(江上直治), 나카오 히코스케(中尾彦助)의 세 사람을 거쳐 현재의 다사카 마츠타로(田阪松太郞) 씨에 이른다.

애당초 심상과 고등소학교가 병치되었을 때 현재의 혼마치(本町) 5정목의 러시아인 소유의 기와집을 빌려 쓰다가 명치 40(1907) 10월에 현재의 미야코마치(都町) 2정목에 있는, 원래 통감부 철도관리국 마산임시건설부의 땅과 건물을 빌려 이전하게 되었다.

다음 해 41(1908) 211일이 기원절(紀元節)이라 길일이라 하여 현재의 교사 낙성식을 거행했다. 당시의 교사는 5백 명을 수용할 수 있게 건축된 것이라서 그 후 몇 번이나 증축을 하고 광대한 강당도 건조해 현재의 모습에 이른 것이다.

현재의 재학생은 고등과(1~2학년)에서 남자 44, 여자 23명 소계 67명이며, 심상과(1~6학년)는 남자 341, 여자 339명 소계780명인데, 이를 16학급으로 나누고 있다.

직원은 교장 다사카 마츠타로 씨 이하 남녀 교원이 18명이다.

특종시설로는 학교간호부를 두어 구급처치를 하게하고 안질 환자의 세안을 하게 된다. 연중행사로는 3월 중순에 대학예회, 527일 해군기념일에 강화(講話)가 있을뿐더러 진해요항에 수학여행도 다니며, 6월 상순에는 학부모총회를 열고 수업참관 및 성과물을 열람케 했다.

7월 중순에서 8월 상순에는 약 3주 동안 해수욕회를 열고 7월 중에는 음악회도 개최하였다. 10월 중순에는 대운동회를 열고 1214일에는 의사회(義士會)를 열고 12월 하순에 대학예회를 여는 것을 통례로 했다.

특히 매년 한 번의 추계 대운동회와 한 번의 학예회는 항민의 오락날로 연중행사 중의 하나다.

교정 남서 모퉁이에 있는 인조 돌궁전은 세이에이(聖影, 천황의 사진. 1871년 무렵부터 시작된 천황 신성정책에 의거해 특정 장소에 사진을 봉안하였다.)와 교육칙어를 봉안하고 있으며 대정 14(1925) 중에 유지들의 기부로 건조된 것이기도 하다.

구마산 방면의 가로 옆, 경남선 철교 부근인 자산동 지역에 소학교의 분교장 교사(현 무학초)가 있으며 1~3학년 아동을 수용하고 있다.

그 총원은 1학년 46, 2학년 35, 3학년 14명이다. 대정 12(1923)에 신축되어 도미마치(富町) 분교장으로부터 이전해 온 것이다.

이 건축비용은 동양척식회사에서 기증받은 원래의 마산지점 사무소 및 사택 13세대의 집을 매각한 돈으로 충당했다고 한다.

여러 의식이나 모임은 전교생이 본교에 모이도록 되어 있으나 장차 제2소학교로 독립시키려는 준비가 진행된다고 전해진다.<<<

이 글은 창원시정연구원이 2021년에 번역한 『馬山港誌』(1926) 중 62번 째 것이다. 그림은 별도로 삽입하였다. 『馬山港誌』는 일제강점기에 발간된 일본 문헌 중 가장 가치가 높은 책으로 평가 받고 있다. 저자는 앞서 게재한 『馬山繁昌記』와 같은 스와 시로(諏方史郞)이다. 본 포스팅은 비영리를 전제로 창원시정연구원의 양해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