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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 도시이야기

마산항지(1926년) - 64 - 곤권(坤卷) / 제2장 교육 기관

by 운무허정도 2023. 9. 11.

3. 공립마산보통학교

신마치대로(新町通)에서 백수십 걸음의 성호동 지역 내의 조망이 좋은 위치에 있으며 오로지 조선인 아동을 교양하는 초등 정도의 학교다.

명치 41(1908) 즉 융희 2310일 한국황제 이척(李拓) 폐하의 생신날인 건원절(乾元節)이란 길일을 잡아 신축 낙성식을 한 교사(校舍)를 기초로 하고 있다.

그 후 몇 번이고 증축을 거듭하여 지금의 모습으로 된 것이다.

 

교정 안쪽에 있는 2층의 큰 교사는 대정 12(1923) 말에 낙성하였고, 수용 학생 수는 현재 22학급으로 1학년부터 6학년까지 아동 총수는 1381명이며 이 중에서 여학생은 348명이다.

당초 교사 별실에는 간이농학교(簡易農學校)가 병치되었는데 허영심이 높은 선인 아동들은 항상 농업자를 멸시하는 경향이 있어 수용 학생 수는 매번 예정에 미달했기 때문에 수년 후 마침내 그것은 폐지되고 말았다.

학교 교사가 세워졌을 때 전교학생 수는 280여 명밖에 되지 않았으며 게다가 그 반수 이상은 모두 배우자가 있고 이미 한둘의 아비가 된 사람도 적지 않았다.

내지인의 눈으로 보면 아주 기이해 보이지만 어릴 적에 결혼해 갓을 쓰고 총각이란 모멸을 피하려는 조혼(早婚)의 폐풍이 심할 때라 학동(學童)이 아니라 학장(學壯)이 배우자가 있다는 것은 전혀 기이하지도 않을 것이다.

국가병합 이후 대정 7~8(1918~1919) 경부터 선인 사이에 향학심이 크게 일어나 따라서 조혼이란 문제도 차츰 개선되어 갔다.

현재의 교사도 광대한데도 입학 희망자 전부를 수용할 수 없는 현황이었으나 그 분교실이나 제2보통학교를 공설하여 향학심의 완화를 도모하는 것이 급한 사업이라 하겠다.

현재의 교장 우에하라 사카에(上原榮)씨의 사택은 교정 바깥의 남서쪽에 있으며 아주 풍치가 좋은 곳에 있다.

직원으로서는 내지인의 훈도 남자 5, 여자 5명과 그 외 상임 간호부 1명이 있다.

또한 선인 훈도 남자 11명과 촉탁 여자 2, 교의가 1명이 있다.

특종연수는 수업에 관한 교재연구와 학년 협의는 매월 각각 한 번씩, 연구수업은 학기마다 한 번씩 하고, 훈련연수는 매일 아침조회, 학년훈화, 복장검열 등이 있다.

수학여행은 매년 6학년에 한해 실시되며 학부모회나 소풍회는 연간 춘추로 두 번, 동창회는 한 번 개회가 통상이다.<<<

이 글은 창원시정연구원이 2021년에 번역한 『馬山港誌』(1926) 중 64번 째 것이다. 그림은 별도로 삽입하였다. 『馬山港誌』는 일제강점기에 발간된 일본 문헌 중 가장 가치가 높은 책으로 평가 받고 있다. 저자는 앞서 게재한 『馬山繁昌記』와 같은 스와 시로(諏方史郞)이다. 본 포스팅은 비영리를 전제로 창원시정연구원의 양해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