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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마산YMCA 산악회 ‘기진맥진’ 지리산 종주기

by 운무허정도 2022. 10. 10.

 

이 글은 마산YMCA 산악회 '기진맥진' 회원 5명의 지리산 종주기입니다. 50대 남녀이기 때문에 걱정도 많았습니다만 전원 무난히 완주하였습니다. 글쓴 이는 김태석 산행대장입니다.

 

구분 내용
일시 2022년 9월 23일(금) ~ 25일(일)
구간 지리산 종주 (성삼재 ~ 대원사 2박3일 코스)
주요 지점 성삼재 ~ 노고단 ~ 연하천(대피소) ~ 삼도봉 ~ 벽소령(대피소, 1박) ~ 세석(대피소) ~ 장터목(대피소, 2박) ~ 천왕봉 ~ 중봉 ~ 치밭목(대피소) ~ 대원사
집결지 3.15 아트센터
교통 카니발 (김태석), 이종호 이사 운전
뒤풀이 하숙집 (양덕동, 아구찜)
참석자 조정순, 김태석, 정민교, 이경수, 김정하 (5명)

 

준비가 이미 산행의 시작

지리산 종주를 하자는 제안이 나온 건 7월 무렵입니다. 김정하 위원님이 이전에도 수차례 제안했지만 워낙 실행하기 쉽지 않은 탓에 추진되지 않다가, 항상 그렇듯이 기진맥진 뒤풀이에서 5명이 의결을 했던 것이죠. 조정순, 김태석, 김정하, 이경수, 정민교 위원님. 그 때부터 산행은 시작된 것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날짜는 9월 23일부터 25일까지 2박 3일, 성삼재에서 대원까지 종주, 이른바 성대종주로, 화엄사~대원사 종주인 화대종주 다음으로 힘든 것이라고 했습니다.

대피소 예약이 급선무, 9월 1일에 시작되는 국립공원공단 예약 사이트에, 우리 5명은 10시부터 일제히 접속에 들어갔습니다. 1박은 벽소령 대피소, 2박은 장터목 대피소입니다.

다행히 아직 10월 단풍 절정기가 아니어서, 어렵지 않게 예약 완료. 이젠 산행 준비물입니다. 2박 3일 동안 먹을 것, 입을 것 등을 짊어지고 가야하기에, 무게와 부피를 최소화하는 가성비 높은 물건들을 갖춰야 했습니다.

발목을 보호하기 위한 중등산화, 추위를 막아줄 경량패딩, 물집을 막기 위한 발가락 양말, 야간산행을 위한 헤드랜턴, 발열식 전투식량. 준비해야 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습니다.

이경수 위원님의 말씀대로, 준비가 이미 산행의 시작이었습니다.

개인 준비물 목록
겉옷, 속옷, 경량패딩, 양말, 우의, 장갑, 수건, 손수건, 물티슈, 모자, 물통, 컵, 물, 수저, 세면도구, 선크림, 충전기, 스틱, 헤드랜턴, 비상약, 간식(행동식), 전투식량, 무릎보호대
공동 준비물 목록
햇반, 라면, 삼겹살, 김치, 깻잎 통조림, 참치캔, 김, 누룽지, 커피, 빵, 스팸, 식판

 

1. 출발(창원, 마산)~성삼재~노고단

 

대망의 9월 23일, 성대종주 출발

드디어 9월 23일, 출발은 새벽 5시, 날이 채 밝기도 전이었습니다. 성삼재에서 7시에 산행을 시작해야 했기에 모두들 3시 반, 4시에 일어났습니다. 고마운 것은 이종호 위원님이 직접 운전을 해주신 것이었습니다.

출발지와 도착지가 다르기 때문에, 우리가 직접 차를 가져가면 대원사 종착지에서 다시 성삼재 출발지로 가야 하는데, 무릎 수술 때문에 산행은 못하시지만 기꺼이 운전을 해주신 이 위원님이 보급조를 자원하신 거죠.

성삼재 휴게소 도착한 뒤 다시 짐을 풀고 공동 물품을 넣어 약간 공간이 있었던 배낭이 꽉 채웠습니다.

김정하 위원님이 내 배낭을 보시더니 여유가 많다면서 참치캔, 코펠, 버너 등을 쑤셔 넣더군요. 40리터나 되는 배낭을 빌려주신 허은미 부장님이 야속했습니다(농담).

첫 날 산행이 가장 힘들다는 건 예상됐습니다. 종주 시 첫 숙소가 되어야 하는 연화천 대피소가 공사 중인 터라, 벽소령 대피소까지 총 16.4km의 거리에다가, 아직 익숙하지 않은 배낭의 무게와 몸 상태 때문입니다.

드디어 출발, 산소를 최대한 흡입하기 위해 입을 다물고 코로 숨을 쉬는 것을 반복하며 천천히 걸음을 내디뎠습니다.

 

노고단을 바라보며 본격 종주길...끌어주고 밀어주며

노고단 고개 해발 1400m에 이르렀습니다. 노고단 정상을 바라보며 좁은 길로 들어섰습니다. 이제 정말 종주가 시작된 거죠.

이경수 위원님이 선두로 길 안내를 맡았고, 조정순, 정민교, 김태석, 그리고 김정하 위원님이 후미를 맡았습니다.

이경수, 김정하 두 분은 종주는 처음이지만, 이미 여러 차례 천왕봉을 오르내리며 노하우를 익힌 터라 종주 내내 대원들을 끌어주고 밀어줬습니다.

날씨는 18-20도 가량, 구름 없고 덥지도 춥지도 않은 기가 막힌 날씨였습니다. 우의를 한 번 사용하지 않을 정도로 2박 3일 동안 쭉~ 이런 일은 극히 드물다고 하던데 말입니다. 40리터에 달하는 배낭을 짊어지고 가야하는 산행 결코 처음부터 쉽지 않았습니다. 바위 길을 오르고 내리기를 반복, 지리산은 그렇게 쉽게 내주지 않는 큰 산입니다.

“보폭을 좁게 하고 리듬을 타면서 소처럼 걸어라”는 명언을 남긴 마산YMCA 남행수 전 총무님의 명언과, “힘들기 전에 쉬고, 배고프기 전에 먹어라” 이경수 위원님의 산행 방침을 기억하며 천천히, 하지만 꾸준히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2. 노고단~연하천~삼도봉~벽소령

 

전투식량으로 전투 같은 첫 식사

2.8km를 걸어 임걸령 삼거리에서 휴식을 취했습니다. 천왕봉으로 가는 길과 피아골로 빠지는 길이 갈라지는 곳입니다.

피아골은 반야봉에서 발원한 물이 임걸령 등의 밀림지대를 지나 섬진강으로 흐르는 계곡으로, 단풍이 지리산의 10경에 들 정도로 유명한 곳입니다. 과거 피밭이 많아서 어원이 유래했는데, 6.25, 여순사건 등 싸움이 벌어질 때 마다 사람이 많이 죽고 피아를 식별하기 힘들어서 피아골이 됐다는 설도 있습니다.

잠시 휴식을 취하는 사이, 많은 등반객이 우리를 추월해 지나갔습니다. 가벼운 배낭과 몸놀림으로 보아, 1박2일로 종주를 하는 분들이거나, 당일치기 천왕봉 등반을 하는 산악 마라톤 매니아입니다. 감탄이 절로 나왔지만, ‘저러다가 무릎 다 가지. 젊을 때 아껴야 하는데..’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오지랖 넓은 일입니다.

다시 1.7km를 걸어 첫 식사를 하는 노루목 삼거리에 도착했습니다. 여기서 옆길로 빠지면 지리산의 제 2봉인 반야봉입니다.

전투식량은 건조한 곡물에 발열제와 찬물을 붓고 13분 정도 기다리면, 저절로 밥이 되는 종주 시 반드시 필요한 물품입니다. 사실 군대에서도 요즘 먹지 않는 것이지요. 역시 맛은 별로더군요.

산행 도중 에너지바, 꿀, 영양갱, 미니약과, 건빵 등 열량이 많은 행동 식량을 많이 먹어서 그런지 배도 안고프기도 하고요. 어쨌든 휴식과 식사를 하니 다시 힘이 났습니다.

 

삼도의 경계 삼도봉에서 발을 모으고

노루목에서 머지않아 삼도봉에 도착했습니다. 해발 1,550m. 전북 남원, 전남 구례, 경남 하동에 걸쳐 있어, 1998년 10월 8일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 삼각뿔 형태의 표지석을 세운 뒤 삼도봉으로 불리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삼도봉에 오르니 갑자기 마산 창동의 ‘삼도’식당의 삼겹살을 상상하는 순간, 아뿔싸 소주를 안 챙겨온 걸 이제야 생각이 나는 겁니다. 물론 국립공원에선 주류 반입이 금지이긴 합니다만, 오늘 저녁 메뉴로 삼겹살까지 준비해 온 마당에 소주를 안 챙겨오다니요.

엄청난 비난과 알콜 금단현상에 시달릴 걸 예상하니 아찔했습니다. 덕분에 간은 건강해지겠죠.

이어서 하개재와 토끼봉 등 높은 봉우리들을 오르내리며 산행을 계속했습니다.

‘내가 왜 이런 고생을 이렇게 하나’란 생각이 들면서도 한 봉우리 한 봉우리 오를 때마다 그 희열은 감히 어디에도 비교할 바가 못 되었습니다.

또 곳곳에 반달가슴곰이 출현할 때 유의사항을 적은 표지판이 있었습니다. 무서웠습니다. 그래서 우리만의 대처방법을 고안해 냈습니다. 곰이 나타나면 어떻게 한다? 어떻게 할지는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합니다. 아니면 나물 곰취를 구해서 곰을 취하게 만들면 됩니다.

지리산 10경
천왕일출(天王日出), 직전단풍(稷田丹楓), 노고운해(老姑雲海), 반야낙조(般若落照), 벽소명월(碧宵明月),
세석철쭉(細石), 불일현폭(佛日顯瀑), 연하선경, 칠선계곡(七仙溪谷), 섬진청류(蟾津淸流)

 

야간 산행 끝에 벽소령 대피소, 그리고 소주 없는 삼겹살

이미 연하천 대피소에 도착할 때는 많이 지쳐있는 상태였습니다. 15km 정도 걸어 체력은 고갈 날 지경이고, 날은 어둑어둑해지고 있었습니다.

이제는 정신력으로 걸어야 하는 상황. 헤드랜턴을 장착하고 앞 사람 발을 보며 걷기 시작했습니다. 자칫 발을 헛디디면 자신도 다치지만 동료들에게 큰 피해를 주기 때문에, 내 몸이 내 몸이 아니었습니다.

그 순간 저 멀리 대피소가 보인다는 이경수 위원님의 반가운 목소리. 드디어 다 왔구나 했는데, 웬 걸 아직 1.7km나 남아 있는 표지판이 등장했습니다.

우린 헛것을 본 겁니다. 이경수 위원님을 원망하고 또 원망했습니다. 이로부터 다시 1시간 30분. 이경수 위원님의 만담, 정민교, 조정순 위원님의 큰 리액션은 사라진지 오래됐습니다.

북한의 ‘고난의 행군’이 이런 것인가. 벽소령 대피소에 도착한 건 밤 8시가 훌쩍 넘긴 시각. 이제부터 저녁 준비에 들어갑니다.

햇반을 물에 끓이고 삼겹살을 굽고 반찬을 나누고. 이경수 위원님은 헛것을 본 걸 반성, 또 반성, 이반성하며 식사 준비를 전담하다시피 했습니다.

소주가 없는 삼겹살, 그래도 먹을만 하더군요, 잠자리에 든 건 10시 반 무렵, 너무 고단한지라, 군대 내무반과 흡사한 숙소의 잠자리도 감지덕지했습니다.

벽소령의 달 풍경은 지리산 10경 중 제4경으로 꼽힙니다. 겹겹이 쌓인 산 위로 떠오르는 달빛이 희다 못해 푸른빛을 띤다 하여 '벽소한월(碧宵寒月)'이라 하는데, 감상은 엄두도 못 냈습니다. 이렇게 지리산의 첫 밤은 지나갔습니다.

 

3. 벽소령~세석평전~장터목

 

 

하늘이 점지해준 지리산의 날씨

지리산의 둘째 날이 밝았습니다. 샴푸와 샤워도 못하고 수십 명이 함께 잤지만, 알콜 기 없는 몸으로 꿀잠을 잤습니다.

오늘 산행의 거리는 9.7km, 어제 보다는 훨씬 짧은 데다, 무거운 배낭을 짊어진 몸도 어느 정도 적응이 된 것 같습니다. 산행 전 감기를 앓았던 조정순 기진맥진 회장님의 몸 상태도 많이 회복된 듯 했습니다.

오늘 역시 쾌청한 날씨입니다. 남한에서 가장 큰 넓이와 높이를 가진 넉넉한 터 같은 어머니의 산, 지리산, 하지만 어머니의 감정을 종잡을 수 없는 것처럼 변화무쌍하다는 지리산, 그런데도 이런 날씨를 점지해 준 ‘천왕봉 할매’에게 감사할 따름입니다.

하지만 지리산은 기후변화에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산행 중간에 삽을 들고 다니는 젊은 연구원들을 만났습니다. 구상나무 복원 팀입니다. 구상나무는 지리산 아고산대에서 자라는 우리나라에만 있는 귀한 종이지만, 온난화현상으로 폐사하고 있고, 이를 복원하기 위해 애쓰는 분들을 마주친 겁니다. 고마운 분들입니다.

 

세석대피소에서의 고마운 만남, 그리고 표고라면

벽소령대피소에서 걷기를 6.3km, 3시간 반을 꾸준히 걸었습니다. 오전이라 체력도 충분하고 조금 힘들더라도 세석대피소에서 점심을 먹으면, 오후 장터목대피소까지 가는 산행이 한결 여유가 있을 거란 판단이었습니다.

토요일이라, 어제보다 등산객이 상당히 많았습니다. 10월 단풍철에 접어들면 풍경을 보고 걷는 게 아니라, 앞사람 엉덩이를 보고 걸어야 한다고 하는 얘기가 이해됐습니다.

지리산을 좋아하는 사람이 이렇게 많을 정도로, 지리산 산행 코스는 수 없이 많고 매력적이기도 합니다.

아니나 다를까 세석대피소는 식사 장소가 없을 정도로 산행객들로 붐볐고, 우리는 약간 발 길이 뜸한 숲 어딘가에 자리를 잡고 식사 준비를 하려는 순간, 국립공원공단 기후변화연구센터에 재직하는 고마운 연구원을 만났습니다.

‘맛없는 전투식량은 저리가라’. 연구원님은 파를 듬뿍 넣고 라면을 끓여주셨고 우리는 햇반과 함께 누구도 부럽지 않을 점심을 먹을 수 있게 됐습니다. 그리고 드립 커피까지...

이런 천운이 어디 있겠습니까. 한국사회, 아직도 인정은 듬뿍 남아 있었습니다. 

 

세석평전의 장관, 촛대봉에서 찍은 양궁샷

세석대피소에서 ‘황제의 식사’를 뒤로 하고, 세석평전으로 올랐습니다.

잔돌이 많은 평야와 같다고 하여 이름이 붙었는데, 해발 1,600m 남한 최대의 고산지대 평원입니다. 봄 철 수십 만 그루의 철쭉이 꽃망울을 터뜨리면 꽃 사태를 이뤄, 지리산 10경 중 6경이 ‘세석철쭉’입니다.

해발이 높아지면서 산행은 다시 힘들어졌습니다. 열량이 많은 행동식을 수시로 섭취하며 힘을 냈지만 뭔가 부족한 하나가 있었습니다.

이 때 다시 이경수 위원님의 이야기가 시작됐습니다.

대학 시절, 지리산MT 도중 세석산장에서 술을 마시다가 부족해서 후배에게 구해오라고 했더니, 글쎄 여기서 왕복 12km인 거림마을 까지 다녀왔다는 전설을 전했습니다. 역시 이 위원님은 구라의 대마왕입니다.

그리고 정민교 위원님의 트로트 메들리. 금영노래방을 옮겨놓은 듯 끝이 없는 레퍼토리에 모두들 혀를 내둘렀죠.

또, 오르막길을 한참 걸었습니다. 도착한 곳은 해발 1,703m의 촛대봉, 멀리 천왕봉이 조망되는 곳입니다. 천왕봉까지는 4.4km. 그 멋진 곳에서 우리는 최고의 ‘양궁샷’을 찍을 수 있었습니다. 김정하 위원님이 요즘 가장 밀고 있는 사진 포즈입니다.

 

장터목에서 김치찌개, 이틀째 밤

둘째 날 숙소인 장터목에 도착한 건 5시 반 경, 어제와 비교하면 양호한 산행이었습니다.

장터목은 과거 남해 사람들이 내륙사람들과 물물교환을 위해 섰던 고산지대의 장터입니다. 지금은 천왕봉과 가장 가까운 대피소로서 주말이면 꽤 붐빕니다.

2019년 신식 화장실로 바뀌어서 깨끗했고 침실도 좋았습니다.

저녁 메뉴는 참치 김치찌개입니다. 참치 캔을 4개나 짊어지고 왔던 김태석 위원에게 가장 기쁜 순간이었죠. 정민교 위원님은 바람을 막아내며 펼친 음식 솜씨로 대원들을 즐겁게 해주셨습니다.

지리산에서 김치찌개,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철저한 준비의 대가 김정하 위원님, 존경합니다.

식사를 마치고 취침에 들어갔습니다. 여성 위원들은 수다를 떠는 다른 팀 때문에 거의 잠을 못 잤다고 합니다. 걱정입니다.

 

4, 장터목~천왕봉~치밭목~대원사(하산)~도착(창원, 마산)

 

꿈에 그리던 천왕봉, 잠시 내비친 일출

지리산의 최고봉인 천왕봉을 오르기 위해 새벽 3시30분에 기상, 4시에 산행에 나섰습니다. 헤드랜턴은 종주의 필수 품목, 서서히 여명이 비춰오자 가벼운 흥분이 발걸음을 재촉했습니다.

장터목 대피소에서 시작되는 오르막길을 지나면 비교적 완만한 오르막길이었습니다. 드디어 해발 1,915m의 천왕봉 정상에 도착했습니다.

좁은 정상 바위에 벌써 많은 분들이 일출을 보기위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6시18분 일출이 시작되자 장엄한 광경에 감탄이 절로 나왔습니다.

항상 구름에 싸여 있어 예로부터 3대에 걸쳐 선행을 쌓아야 해돋이를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역시 잠시 해가 보이는가 싶더니 이내 구름 속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그래도 이 정도면 매우 운이 좋은 거라고 합니다.

 

기진맥진의 역사적 순간

빼놓을 수 없는 기념사진 촬영, 기진맥진 현수막을 자랑스럽게 펼치고 역사적인 한 컷을 담았습니다.

기진맥진은 마산YMCA 산악회의 맥을 잇고자 2020년 11월에 창립했습니다.

첫 산행으로 창원둘레길 마재고개~제2금강산 약수터 구간을 걸었고, 조정순, 김태석, 김형준, 이종호, 이경수, 김정하 위원이 참석했습니다.

가깝고 가벼운 산행을 추구하고자 ‘기진맥진’이란 작명을 했고, 매월 마지막 주 일요일에 창원둘레길 같은 정기 산행과 제주 한림, 통영 한산도 망산, 거제 칠천도 옥녀봉 등 특별산행도 진행했습니다.

영호남YMCA 교류행사인 노고단 순례 등 YMCA 행사에도 적극 참석했죠. 조정순 회장과 김태석 산행대장을 중심으로 꾸준히 회원이 늘어 28명이나 될 정도로 활성화됐습니다. 이런 기진맥진이 천왕봉을 오르다니요.

 

고단한 하산 길, 그래도 끝이 보인다

천왕봉 정상에서 1시간을 넘게 보내고 하산을 시작했습니다.

천왕봉에서 내려가는 길은 대원사, 중산리, 장터목 등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우린 가장 멀다는 대원사 길을 택했습니다.

천천히 완만하게 가기 때문에 덜 힘들고 무릎에도 무리가 덜 갈 거라는 건 단순한 위로의 말이었습니다. 절대 편하지 않습니다.

조금 내려가는가 싶더니 다시 심한 오르막길, 중봉에선 매우 보수적인 산청 분을 만났습니다. 뛰어난 뷰포인트여서 사진 촬영을 하는데, 남성이 하면 바로 내려오라고 하고, 여성이 포즈를 취하면 ‘뷰디풀’을 연발하는 겁니다. 역시 보수의 심장다웠습니다.

 

다시 하산 길, 곳곳에서 단풍이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지리산 단풍의 절정은 10월 20일경, 산림청에 의하면, 단풍나무 잎의 50% 이상이 물들면 단풍이 절정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자랑스러운 기진맥진, 내년에 지리산 종주 또 갑니다

산행은 등산보다 하산이 더 힘들다고 합니다. 체력이 소진된 상태고 무릎을 많이 써야하기 때문이죠. 따라서 등산스틱과 무릎보호대 역시 필수 장비입니다.

조정순 회장님은 다 챙겨놓고 마지막에 배낭에 넣지 않은 결정적인 실수로 종주 전 과정을 무릎보호대 없이 이겨내셨는데 역시 철의 여인입니다.

종주 길의 마지막 대피소인 치밭목 대피소에서 점심을 먹었습니다.

과거 개인이 목장을 했던 곳인데 국립공원공단에서 인수해 리모델링한 깨끗한 대피소이지만, 주로 서쪽에서 등반으로 시작하는 일이 많아 이용객이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햇반과 라면, 전투식량 등을 모두 다 먹어치웠습니다. 이제 배낭은 한결 가벼워 졌습니다.

다시 하산 길, 체력이 고갈된 상태라 휴식을 자주 취했습니다. ‘대화가 필요해’ 너무 힘들고 지치니 대화는 사라졌고 ‘종주 다신 안 온다’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때 김정하 위원님이 제안한 대원사 계곡에 발 담그기, 피로가 싹 사라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이종호 위원님이 대원사 위 유평마을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전화가 왔습니다.

이제 정말 얼마 안 남았는지 바위 길은 줄어들고 흙길로 이어졌습니다.

저 멀리 들리는 이종호 위원님의 우렁찬 목소리. 천사의 목소리가 이런 것일까요. 드디어 5명이 무사히 2박3일 성대종주를 마쳤습니다.

자랑스러운 지리산종주, 인생 최대의 버킷리스트를 달성한 것이죠. 아마 평생토록 잊지 못할 겁니다. 또, 우리 같은 아마추어들도 준비만 철저히 하면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무엇이라도 아주 힘들더라도 성취를 하게 되면 또 도전한다고 하죠.

 

기진맥진 다른 멤버들을 위해 지리산 종주 내년에 또 추진할 거냐구요? 

네 또 갑니다.<<<

 

(뒤풀이까지 마련해주신 이인안, 신삼호, 허정도, 박수연, 박유경, 이윤기 위원님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