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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100산-37 ; 창원 반룡산(팔용산)

by 운무허정도 2022. 10. 19.

학봉산악회 창원 반룡산(盤龍山) 산행기

 

2022년 10월 15일(토)

참석자 ; 신삼호 회장, 신승기 총무, 서익진 회원(글쓴이)

 

반룡산의 설움

팔용산(八龍山)도 팔룡산도 아닌 반룡산(盤龍山)이다. 반룡산은 억울하다. 팔용산이 근거가 박약하기 때문이다. 궁금하면 계속 읽으시길 바란다. 현재 사용되는 공식 명칭은 팔용산이지만 그럼에도 반룡산은 반룡산이다.

날은 10월 15일. 그러고 보니 양력 보름이다. 둥근 달이 아니라 둥근 해가 떴고 맑은 날씨로 먼 산들도 뚜렷하다. 하지만 전형적인 가을 날씨에는 2% 모자란다. 오늘 산행지는 원래 언제나처럼 무학산 둘레길이었다. 단톡방으로 확인된 참가자는 회장과 총무 그리고 필자밖에 없다. 회장과 총무는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산다. 평소에도 반룡산을 집 앞산 내지 뒷산으로 여기며 자주 오르락 내린다. 그래선지 둘이서 반룡산 가자고 한다. 나도 찬성이다. 오랜만에 가보고 싶어졌다. 대신 몇 번 갔던 출발점이 아닌 다른 곳으로 하자고 했다. 회장이 타워맨션 옆 동부교회 주차장으로 오라고 한다. 9시 39분까지? 30분의 오타다. 오늘 산행은 백산에 포함하자는 제안에 불참자 허 원로, 딴지를 건다. ‘글 쓰면 인정.’ 산행기 안 쓸 것이라고 지레 짐작하고 하신 말인 줄 다 안다. 속이 뻔히 보인다. 자기가 참가하지 않은 백산 산행이라니 불만인거다.

 

타워맨션 옆 동부교회라 대충 위치는 알지만 확신이 안 선다. 차를 몰면서 휴대폰으로 검색한다. 아니, 웬 동부교회가 이리 많어. 스크롤을 한참 내려야 할 정도다. 자세히 보니 양덕동에 있는 건 ‘마산동부교회’다. 뭐든지 정확하게 설명을 해주는 게 상대방을 배려하는 것임을 재삼 깨닫는다. 5분 늦었다. 회장과 총무가 기다리다가 주차장을 지시해준다. 뒤쪽 산기슭에 상당히 넓은 부지에 조성되어 있다. 우측 끝에 있는 인조 목재 계단을 올라가니 등산길로 이어진다. 넓고 잘 정비된 등산로, 길바닥을 인조 돌로 깔아 놓았다. 돌 간격이 좀 넓어 내려올 땐 잘못하면 발이 걸려 넘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출발부터 코스 논란이다. 이건 학봉산악회가 백산 산행을 갈 때마다 마주치는 연례행사 비슷한 것이다. 나 하고 대열의 후미를 장식하는 일이 잦은 신 회장. 그런데도 언제나 긴 코스를 좋아한다. 내겐 미스터리다. 그래서 자칭 원로들의 불평을 듣곤 한다. 동네 뒷산 취급하는 신 회장은 정상에서 팔용저수지로 넘어갔다가 다시 회귀하자고 한다. 나는 손사래를 친다. 정상에서 불암사(佛巖寺) 가서 보고 내려오는 코스로 하자고 우긴다. 좀 가다가 신 회장이 그럼 정상에서 저수지 쪽으로 내려가다 중간쯤에서 불암사로 오는 길이 있다는 타협안을 제시해서 찬성했다.

돌길을 따라 올라오면서 좌편을 보니 쭉쭉 곧은 나무들이 우거져 있는 데 멀리 계곡 아래에 벤치도 두 어 개 있다. 삼림욕장인가? 근데 수종을 모르겠다. 이때 허 원로 안 계신 게 좀 아쉬웠다. 나무를 많이 아시는 것 같던데...

돌길이 끝나는 곳에 ‘팔용근린공원’이 있다. 아니 여긴 팔용동도 아닌데 웬 팔용공원? 물론 산 이름이야 팔용산이긴 하지만. 여긴 양덕동이고 팔용동은 다른 곳에 있으니 나는 반룡공원으로 바꾸는 게 좋겠다고 주장했다. 순전히 내 생각이지만... 문득 원래 반룡산이던 게 어쩌다 팔용산으로 개명했는지 궁금해졌다. 결국 이 문제는 오늘 산행방담의 주요 테마가 되었다.

어쨌든 정말 작은 공원이다. 이름하여 ‘양덕꽃동산.’ 네덜란드식 풍차 그리고 작은 꽃동산 한 구석에 조용히 돌아가고 있는 물레방아. 바로 위에는 각종 운동설비를 갖춘 작은 운동장이 있다. 뭔가 좀 색다른 느낌을 준다. 나름 깔끔하게 꾸며진 자연 속의 인공공원이다.

공원 구경을 마치고 본격적으로 산을 타려 하는데 웬 작은 비석이 하나 보인다. 회장과 나는 뭔가 하고 살펴보니 李点佛功勞碑이다. 이 정도 한자는 아는 회원들이라 생각하고 한글은 생략한다. 뒷면 글이 잘 안 보여 내가 휴대폰 전등을 켜서 비추며 읽고, 신 회장이 휴대폰으로 녹음을 하고, 신 총무가 증명사진을 찍는다. 세 명은 최적의 조합이다. 뭐든지 물건이 서려면 발이 최소 세 개 있어야 한다. 공원 조성에 얼마나 큰 공을 세웠길래... 어쨌든 이 비석에도 반룡산이란 글이 보인다. () 유물 하나 탐색한 것에 흐뭇해하면서 소소사(小小史)’(역사학계의 미시사보다 더 소소한 개인과 지역의 역사를 지칭하기 위해 리좀아카데미에서 만든 용어)의 가치를 음미한다.

 

이제 본격 산행이다. 올라가면서 보니 여기저기로 오솔길이 보인다. 동네 뒷산(?) 답게 산등성이로 오르는 길이 여러 갈래이다. 열심히 가다보니 마지막 정상으로 올라가는 45도 경사의 바윗길이 떡 하니 앞을 가로막는다. 우측으로 불암사 가는 길이 나 있는 갈림길에 등받이 없는 벤치 하나. 우리는 나란히 앉아 각자 가져온 먹거리를 꺼낸다. 대추알과 생강젤리. 떡, 쌀과자 등 다들 마님들이 챙겨줬다니 뭔 일? 번개 백산의 묘미인가 한다. 한숨 돌린 뒤 돌격! 정상을 탈환하라! 이거 뭐 ‘태극기 휘날리며’ 버전이다.

반룡산이 메트로시티 선민들에겐 동네 뒷산인지는 몰라도 내가 보기엔 구마산의 진산인 것 같다. 사천의 와룡산과 각산의 관계처럼. 사방을 죽 한 번 돌아보고 있으니 산행기 쓸 작가답다는 말이 들린다. 칭찬일까? 안 쓸 수 없게 만든다. 눈 아래로 자유무역지대가 보이고 이어서 합포만이 펼쳐진다. 돝섬, 등대섬, 멀리 칠천도와 거제도까지 확 트인 전망이다. 무학산 학봉의 전망과는 또 다른 맛이다.

 

정상 바로 앞에 무덤이 하나 있고 철책으로 둘러싸여 있다. 비석에 따르면 성주 이씨 동구의 무덤이다. 우스운 건 무덤 주인의 약력은 없고, 그 선조들이 영의정이나 경상수군병마절도사 등을 지냈다며 여기가 명당이라 북면에서 이곳까지 운구했다고 자랑한다. 그건 성주 이씨들 일이고 우리에겐 2005년에 세운 이 비석에 반용산이라 적혀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신 회장은 그새 약속을 잊었는지 또 저수지까지 내려가자고 한다. 무심코 뱉은 것 같아 역시 신 회장은 선천적으로 긴 코스 체질인가 보다. 그러나 어림없지. ‘지구를 지켜라’가 아니라 ‘약속을 지켜라’고 외치며 주변에 알아보니 회장이 말했던 저수지로 내려가는 도중에 불암사로 빠지는 길은 없다는 판결이 났다. 맨 처음 합의한 코스대로 불암사로 직행한다.

불암사로 가는 소로길은 너무 험했다.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길은 평평한 절벽 길인데. 기와 얹은 전망대에서 그동안 먹지 않고 남겨왔던 커피를 먹으려 하는데 선점자가 너무 많고 전망도 별로일 것 같아 지나쳐갔다. 불암사가 내려다보이는 곳에 도착했다. 우측으로 돌아 내려가려는데 잔돌을 쌓아 만든 돌무더기 앞면에 작은 동자상이 모셔져 있고, 작은 책상 앞면에 ‘학생성공’(?)이라 쓰인 것 같다. 독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암사는 내 기억에 남아 있는 잔상과는 너무나 달랐고 다소 실망감을 주었다. 거대한 수직 암벽 앞이라 전망은 기가 막혔지만 평지가 부족해 데크를 만들어놓았다. 좁은 공간에 건물만 가득해 좀 답답하다. 옛날에 듣기로 무슨 암(庵)이라 했던 것 같은데, 대웅전, 탑, 범종각, 요사채를 갖추고 있어 당당히 절 사(寺)자를 붙인 것 같다. 불암사의 기원과 변천은 사진으로 대신한다. 암벽에 새긴 유모관세음보살 마애불상 발치 아래에 세운 석굴법당에서 스님의 우렁찬 독경 소리가 낭랑하다. 살짝 들여다보니 석가모니 등 부처님 세 분이 암벽 쪽에 모셔져 있고, 스님 뒤로 여자 몇 분이 앉아 있어 무슨 제를 지내는 것 같았다.

 

불암사로부터 나오는 소로길은 왔던 길과는 다른 길이다. 길 맞나 하며 직진을 계속 하니 등산로와 만났다. 오면서 신 회장이 지역사 썰을 푼다. 이 산의 이름은 언제부터 반룡산이 되었을까? 이건 알 수 없지만 오랫동안 반룡산으로 불리었다는 실물증거도 많이 남아 있고, 사람들의 기억도 그러하다. 그런데 2000년을 고비로 팔용산으로 바뀌기 시작했고, 행정이나 지도에도 팔용산으로 표기되고 있다. 그런데 뚜렷한 이유가 없다. 용이 꽈리 틀고 앉은 산인가 아니면 8마리의 용이 내려온 산인가. 둘 다 인간의 상상이다. 반룡산이 발음하기 어려워 자연스럽게 팔용산으로 바뀌었을 가능성도 크다. 한때 팔용산조차 팔룡산이 맞다고 주장한 시의원이 있었다는 말도 있다. 어쨌든 양덕동 팔용근린공원은 어울리지 않는다. 이것만이라도 반룡근린공원으로 개명해야 하지 않을까. 망구 내 생각이지만 내가 봐도 일리가 있다.

 

오늘 산행을 번개백대 산행으로 만들기 위해 너무 애를 쓴 것 같다. 왜 백산산행인가? 회장, 총무, 원로 한 명이 참가했으니 산행의 격식이 갖추어졌고, 백산 현수막 들고 정상에서 증명사진을 찍었고, 점심식대를 회비로 지출했으며, 산행기까지 작성했으니 완벽하고도 넘친다. 매생이굴국밥, 굴전, 생탁 – 가성비 짱이다. 게다가 백산 산행으로 공금으로 먹다니, 이 얼마나 기막힌 감동인가. 시비 거는 자는 참형에 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