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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화폐민주주의연대 뉴스레터 - 10 / 서익진의 Q&A

by 운무허정도 2022. 11. 10.

서익진의 Q&A

 

현행 통화 공급 시스템의 모순

- 롤러코스터 식 경기변동 -

 

 

현행 통화 공급(발행 및 배분) 시스템이 지닌 가장 기본적인 모순은 이자 불입용 돈의 부재가 경제성장을 강제한다는 사실 그리고 금융 부문은 내재적인 불안정성을 드러낸다는 사실이 아닐까 합니다. 이것들은 이미 앞선 뉴스레터들에서 다룬 바 있죠. 이번 제10호에서는 현행 통화 공급 시스템이 드러내는 또 다른 중대한 모순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그것은 이 시스템이 경기변동(business cycle)의 진폭과 속도를 키운다는 사실입니다. 놀이동산의 롤러코스터 타 보셨나요? 저는 겁이 나서 시도조차 못해 봤습니다. 그 특징은 거의 수직으로 상승한 뒤 급강하하는 데 있죠. 롤러코스터라는 단어는 호황(호경기, progression)과 불황(불경기, regression)으로 이루어지는 다소 완만한 경기변동이 아니라 활황(boom)과 (대)공황[(great) depression]으로 이루어지는 급격한 경기변동을 은유적으로 표현합니다. 이러한 경기변동이 통화 공급 시스템과 무슨 관계가 있는지를 이해하기 전에 경기변동에 관한 기초사항부터 살펴보는 게 좋겠습니다.

경기는 경제의 상태를 말하며, 경기변동이란 경기가 특정한 상태를 지속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의 흐름에 따라 좋은 상태(호경기)와 나쁜 상태(불경기)를 주기적으로 반복하는, 이른바 경제의 부침 현상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경기 상태를 알 수 있게 해주는 경제지표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중 가장 대표적인 지표인 국내총생산(GDP) 성장률로 보면, 상대적으로 높은 성장률이 지속되는 기간이 있다면 상대적으로 낮은 성장률이 지속되는 기간이 있고, 이처럼 상반된 두 가지 상태가 주기적으로 반복된다는 거죠.

참고로 경제성장(economic growth)이란 이러한 경기변동을 동반하면서 GDP가 장기적으로 추세적으로 증가하는 현상을 말합니다. 그래서 경제의 규모가 연간 늘어나는 증가율은 부침을 보이지만 장기적으로는 늘어나는 경향을 말합니다. 다시 말하자면 경제는 성장을 지속하지만 그 와중에 호황과 불황이 반복해서 나타난다는 겁니다.

 

산업 자본주의 또는 실물경제에서의 경기변동

경제학에서 경기변동의 원인과 과정을 설명하는 전형적인 방식을 알아볼까요? 지금 어떤 이유로 성장이 지속되고 있다고 합시다. 시장에서 물건이 잘 팔리니 기업들은 가동률을 높이고 고용을 늘립니다. 평소 70% 안팎에 머물던 가동률이 80%, 90%, 이렇게 올라가는 거죠. 사장들은 안 하던 야근도 시키고 휴일근로도 시킵니다. 고용도 늘립니다. 갈수록 일 시킬 사람 구하기가 어려워지고, 임금이 올라갑니다. 노동자의 처지가 나아지니 소비는 더욱 늘어납니다. 물건이 더 잘 팔리니 기업들은 생산량을 더욱 늘려 더 많이 시장에 공급합니다.

이처럼 수요가 느는 만큼 공급도 거의 같이 늘어나므로 물가는 그다지 올라가지 않습니다. 정말 호시절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선순환 또는 호순환이 정착됩니다. 사람들은 호경기의 지속이라는 낙관적인 전망을 갖기 시작합니다. 기업들은 곧 완전고용 상태(100% 가동률과 자발적 실업자가 없는 상태)가 올 것에 대비해 생산능력 자체를 확충하기 위해 투자를 늘립니다. 기존 기업은 기계를 한 대 더 들이거나 공장을 한 채 더 짓고, 새로운 기업이 생겨나기도 합니다.

이에 따라 소비와 투자를 합친 총수요가 늘어납니다. 그러나 소비 증가는 즉각 시장 수요를 늘어나게 만들지만, 투자 증가는 시장 공급을 즉각 늘리지 못합니다. 투자가 실제로 생산능력 확충으로 이어져 시장 공급이 늘어나는 데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죠. 이처럼 총공급이 총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므로 물가가 상승하기 시작합니다. 물가 상승 초기에는 사람들이 물가가 더 오르기 전에 물건을 사야겠다며 소비를 더욱 늘리는 경향이 있고, 그래서 기업도 투자를 더욱 늘리게 됩니다.

그 결과 물가는 더욱 상승합니다. 이제 – 정부가 경기 안정화 정책을 사용하지 않거나 시기를 놓친다면 - 호황은 활황(boom)으로 발전하고, 거품이 끼기 시작합니다.

물가 상승이 지속되지만 임금은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합니다. 소비를 지탱하는 임금은 해마다 노사교섭을 통해 경직적으로 변동하기 때문이죠. 물가 상승률만큼 임금 상승을 달성하지 못하는 노동자나 노조가 생기게 마련이고, 이런 문제가 없는 사람들 중에서도 물가가 너무 높아졌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임금이 총수요를 지탱해주지 못하면 소비 증가세는 둔화되고, 심지어 소비 자체가 줄어들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투자도 줄게 됩니다. 결국 총수요는 증가세가 둔화되고 심지어는 줄어들 수도 있습니다. 이제 사태가 반전됩니다. 불황이 시작되고, 선순환이 악순환으로 바뀝니다. 소비 감소, 매출 감소, 고용 감소, 투자 감소, 물가 하락으로 이어집니다. 낙관적 전망이 비관적인 전망으로 바뀝니다.

소비자들은 물가가 더 낮아질 것으로 예상하고 당장의 소비를 줄입니다. 일자리도 불안해지므로 소비를 줄이고 저축을 늘립니다. 시장에서 수요가 줄어들기에 기업들은 판매가격을 인하하게 되고, 결국 경쟁력이 약한 기업은 부도를 내거나 망하기도 합니다. 임금은 정체되거나 하락하고, 실업자는 늘어납니다. 이에 따라 소비는 더욱 감소하고, 악순환은 확대됩니다. 이러한 악순환이 어떤 이유로 급격하게 진행되면 – 또는 정부가 연착륙 정책을 세우지 않거나 때를 놓친다면 – 공황(depression)으로 진전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물가가 지나치게 낮아지면 줄어든 소득이지만 그 구매력이 회복되어 다시 소비가 늘어나기 시작합니다. 이와 동시에 기업들의 파산과 구조조정으로 인해 생산량이 줄어들어 공급량이 이미 줄어든 소비량에 근접하면 물가 하락도 멈추게 됩니다. 이제 저점에 도달한 경기는 회복세로 반전되고 호황으로 발전하며, 선순환이 시작됩니다. 이것이 강단 경제학이 가르치는 전통적이자 전형적인 경기변동의 모습입니다.

 

금융 자본주의 경제에서의 경기변동 : 실물금융경제

여기서 대단히 중요하지만 강단경제학이 말하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러한 경기변동 설명이 실물경제를 전제로 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뭐, 당연한 것 아니냐고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 국민 개개인과 나라 전체의 경제 사정을 기본적으로 좌우하는 것은 성장과 고용 그리고 소비자 물가가 결정되는 실물경제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기 때문이죠.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은 경제라 하면 주식, 채권, 외환 같은 금융 경제와 아파트나 토지 같은 부동산 경제를 먼저 떠올리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실물경제가 사라지거나 그 중요성이 감소한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오늘날 우리는 경제하면 실물경제만이 아니라 금융자산과 부동산을 포괄하는 자산(assets)경제까지 동시에 포함해 얘기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경제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한때 ‘복부인’으로 대변되는 부동산 투기세력이 판치던 부자들만의 노름판이 이젠 ‘영끌족’으로 상징되는 청년들까지 가세한 전 국민이 참가하는 ‘재테크’ 노름판으로 발전했습니다. 세상이 어쩌다 이렇게 변하게 되었는가에 답하려면 또 다른 지면을 빌릴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서 일단 확인해 두고자 하는 점은 자산경제가 실물경제로부터 독립된 독자적인 경제영역을 구축해 자신의 고유한 경기변동 양태를 보여주며, 나아가 자산경제의 경기변동이 경제 전체의 경기변동을 좌우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경제적 사실들 하나하나가 별도의 탐구대상이지만, 여기서는 은행이 주도하는 현행 통화 공급 시스템이 실물경제와 자산경제를 포괄하는 경제 전체의 경기변동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에 주목하고자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은행의 대출 행태의 특징을 살펴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은행의 운명 : 신용 위험

통화 공급을 담당하고 있는 시중은행은 민간기업이므로 당연히 이윤 극대화 전략에 따라 행동합니다. 은행의 가장 중요한 수익 활동은 대출 즉 신용 제공입니다. 은행이 대출하는 돈은 은행 자신은 물론 다른 어느 예금자의 돈도 아니며 그냥 자판을 두드려 새로 창조한 돈이라는 사실은 이미 알고 계시겠지요. 비록 그렇다 하더라도 은행이 누군가(갑)에게 대출(예를 들어 1억 원)을 하는 순간 은행의 대차대조표는 상태가 변합니다. 그 차변에 있는 자산란에 갑에 대한 대출채권(1억 원)이 기록됨과 동시에 대변에 있는 부채란에 갑의 예금(1억 원)이 기록됩니다. 새 돈 1억 원이 만들어짐과 동시에 시중 통화량도 그만큼 늘어납니다.

이 대출 계약의 만기가 도래해 갑이 채무(1억 원)를 상환한다면, 은행 대차대조표는 대출 때와는 정반대의 변화를 겪게 됩니다. 즉 대변에 기록된 갑의 예금(1억 원)과 차변에 있던 갑에 대한 대출채권(1억 원)이 동시에 삭제됩니다. 1억 원은 소멸되고, 시중 통화량은 그만큼 줄어듭니다. 결국 은행의 대차대조표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대출 이전의 상태로 되돌아갑니다. 그러나 그 사이에 은행은 약정한 이자수익을 올렸습니다.

그런데 만약 차입자가 만기에 이 돈을 상환하지 못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은행 대차대조표의 부채란에 있던 갑의 예금은 사라져 없어진(그래서 대출금을 상환할 수 없었던) 반면, 자산란에 등재된 대출채권은 그대로 남아 있죠. 장부상 존재하는 채권이지만 돈을 받을 수가 없게 된, 이른바 부실채권이 됩니다. 따라서 은행은 대차 균형을 유지할 수 없게 됩니다.

그래서 이를 ‘대차대조표’ 위기라고도 부르기도 하죠. 은행의 입장에서 보면 애초에 존재하지 않던 새 돈 1억 원을 창조해 대출함으로써 1억 원의 대출채권이라는 자산을 갖게 되었는데 그 내용물은 사라지고 껍데기만 남은 겁니다. 이 금액은 차입자 갑의 채무 변제를 통해서만 삭제될 수 있는데 채무자 갑의 파산으로 은행이 이 돈에 대한 책임을 고스란히 떠안게 됩니다. 은행은 자신의 돈 즉 자본금으로 이 손실을 메워야 합니다.

은행은 대출할 때마다 이처럼 상환불능(default)이라는 위험(risk)을 떠맡게 되는 것은 운명입니다. 물론 이건 모든 대출자의 운명이기도 하지만요. 이를 경제학은 ‘신용 리스크’라 부릅니다. 이러한 위험을 사전에 예방하려면 대출심사를 최대한 신중하게 하는 방법밖에 없으며, 이를 ‘안전성’ 추구라 하죠. 그런데 안전성만 추구하면 대출을 늘리기 어려워지고, 이는 은행의 본령인 ‘수익성’을 해치게 됩니다. 안전성과 수익성은 서로 배치되는 경향이 있으므로 은행은 이 두 가지 원칙을 동시에 고려함으로써 이윤(이자수익)을 극대화하려고 애를 쓰게 됩니다. 은행이 대출 신청자에게 담보물이나 보증인 설정을 요구하고, 차입자들을 신용등급에 따라 차별하는 이유입니다.

게다가 차입자가 대출금을 사용할 용처를 사전에 알고자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일반적으로 은행은 국채와 같은 가장 안전한 일종의 무위험 대출을 일순위로 하며, 대기업과 부동산, 주식 등 자산시장 투기자금, 부동산 담보 대출을 선호하는 반면, 신용등급이 낮은 사람, 중소기업, 혁신기업, 사회적경제조직, 학생, 실업자에 대한 대출 등 불확실성과 리스크가 커서 안정성과 수익성이 확실치 않은 용처에는 대출을 자제하거나 거부합니다. 요컨대 은행의 이윤 극대화 논리에 따른 대출 결정 행태는 사회적 또는 공익적 필요 충족을 위한 자금 수요에 원천적으로 부응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은행의 ‘경기 순행적인’대출 행태

더욱이 은행들은 경기변동의 국면에 따라 상이한 대출 행태를 보여줍니다. 이른바 ‘경기 순행적’ 자금 공급 행태입니다. 은행은 모든 대출의 안정성과 수익성이 높아지는 호경기에는 대출을 늘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대출받기가 용이해지므로 가계의 소비지출과 기업의 투자지출도 늘어나 경기는 더욱 좋아집니다.

그러나 늘어난 수요로 인해 물가도 그만큼 더 상승 압박을 받게 됩니다. 실물경제의 물가도 상승하지만 주식과 부동산 같은 자산 가격은 더 많이 상승합니다. 은행들이 실물 부문보다 자산 부문에 대한 대출이 더 안전하고 더 높은 수익을 가져다준다고 판단하기 때문이죠.

자산 가격 상승은 유명한 ‘부의 효과’(wealth effect, 자산 가격 상승으로 해당 자산의 소유자가 소득이 증가했다고 느끼도록 만드는 효과)를 통해 경제 전체를 활황(boom)으로 이끌어갑니다. 요컨대 은행의 대출 증가가 자산경제의 붐을 초래하고, 이는 실물경제의 호황을 더욱 조장한다는 거죠.

자산경제의 경기변동은 실물경제의 그것보다 변동의 폭이 더 크고 변동의 속도도 더 빠릅니다. 실물시장과는 달리 자산시장에는 공급이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거래자들이 이른바 모방(무리) 행태를 보여 ‘사자’ 또는 ‘팔자’로 쏠림 현상을 나타내기 때문입니다. 이를 자산시장의 자기실현 과정이라고도 부릅니다. 주가 상승이 기대되면 모두가 사려고만 들어 실제로 주가가 상승하는 현상을 말합니다.

게다가 자산 인플레이션은 사실은 거품(실질가치의 증가 없는 가격만의 상승)이기 때문에 반드시 터지게 마련입니다. 거품 폭발 가능성에 대한 인식이 생기고 이것이 시장 참여자들 사이에 전파되어감에 따라 시장에서는 ‘사자’가 ‘팔자’ 국면으로 바뀝니다. 거품은 터지고 자산 가격은 폭락합니다. 은행에는 부실채권이 누적되고 심하면 은행위기(대차대조표 위기)가 나타납니다. 은행은 대출을 축소하고 기존 대출의 상환을 독촉할 수밖에 없습니다.

즉 기존 채무의 만기연장을 거부하며 신규 대출을 중단합니다. 이른바 신용경색(credit crunch)이 나타납니다. 이처럼 통화량이 축소되어 시중에 돈이 마르게 되면 흑자기업마저 도산합니다. 불황은 공황으로, 드물게는 대공황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요컨대 은행은 불황이 도래하면 대출을 급격히 줄임으로써 불황을 더욱 심화시키는 역할을 하는 겁니다.

결국 이윤 극대화 논리에 충실할 수밖에 없는 은행이 경제활동에 불가결한 돈을 공급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현행 통화 공급 시스템에서는 호황에는 대출을 늘리고 불황에는 대출을 회수하는 은행의 ‘경기 순행적’ 대출 행태로 인해 경제 전체의 경기변동이 증폭되어 경기변동은 롤러코스터 형태를 취하게 된다는 겁니다. 그만큼 경제 전체는 그만큼 더욱 불안정해지는 겁니다.

다음 호에서는 현행 통화 공급 시스템의 또 다른 모순인 민간은행의 ‘대마불사’ 라는 특혜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서익진 : 화폐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 전 경남대 경제금융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