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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 도시이야기

마산항지(1926년) - 68 - 곤권(坤卷) / 제3장 운수 교통기관

by 운무허정도 2023. 10. 9.

2. 사철(私鐵) 경남선(慶南線)

대정 13년(1924) 12월 1일에 제1기선인 마산, 군북 20마일을 개통하고 동 14년 6월 15일에 제2기선인 군북, 진주 간 24 마일을 개통했다.

조선철도회사가 경영하는 것인데 마산역 구내에 출장소를 마련하고 몬덴 가츠타로(門傳勝太郞) 법학사를 소장으로 해당 철도의 일체 사무를 보게 하는데 오직 승차권의 출개찰(出改札)과 화물취급은 편의상 철도국 마산역에 위탁하고 있다.

원래 본선은 고베의 스즈키쇼텐(鈴木商店)이 기획한 것으로 고슈경철도(五州輕鐵)의 변형으로 총 자본금 1천만 원에 남조선철도회사(南朝鮮鐵道會社)가 건설에 착수했던 것이다.

동 회사는 대정 9년(1920) 중에 창설하여 본사를 경성에 두고 있었으나 동년 말에 이것을 마산으로 옮겨 역구내인 미나토마치(湊町) 1번지인 현 출장소에 임시로 큰 사무소를 건축한 것이다.

그 목적은 경남 마산과 전남 송정리(松汀里, 현재 광주광역시 광산구 송정동)를 동서의 양 기점으로 하는 200마일 사이에 철도국과 같은 노폭 약 1.45 미터의 광궤 철도를 부설하여, 마산만의 해변을 매립한 후 각종 시설을 만들고 전남지방의 생산물을 마산에 집산시키는 데에 있었다.

니시모토구미(西本組)에 공사를 청부시켜 대정 11년(1922) 6월에 기공하고 창원군 내서면 중리에 공무소를 두고 사택을 지어 전화도 가설하였다.

연장 480 미터의 용담터널 공사에는 경전(京電) 마산지점 발전소에서 80마력의 전기공급을 받아 착암기를 사용해 다음 해 대정 12년(1923) 1월 30일 오전 5시에 관통하였다.

이에 앞서 마산부내의 공사는 대정 11년(1922) 11월에 착수하여 환주산의 돌출한 각진 땅을 채굴해 철도용지로 쓰일 논밭을 매립하고 몽고정 위에는 철교를 가설하며 상남동에 북마산역을 건설하였다.

이 무렵 조선사철합동안(1923년 9월, 당시까지 조선에 있던 조선중앙철도, 서선식산철도, 남조선철도, 조선산업철도, 조선산림철도, 양강척립철도 등 6개 사설철도 회사들이 조선철도주식라는 하나의 회사로 합병되었다) 발표되어 남조선철도의 간부는 니시무라 마사오(西村正雄)씨 이하 거의가 새 회사인 조선철도회사에 전근하였다.

남철(南鐵) 기사장(技師長)인 이케가미 시게마사(池神重政) 씨만 마산출장소장으로 머물며 제2기선 진주까지의 공사에 매진하였다.

마산, 진주 사이의 역 이름은 북마산, 중리, 산인, 군북, 원북, 평촌, 반성, 이천(耳川), 갈촌, 남문산(南文山), 개양역으로 모두 13개 소이다.

<1970년대 북마산 역>

마산역과 북마산역에서의 발착시각은 다음과 같다.

발착 구분 마산역 북마산역 접속방면
오전 6시 50분 오전 6시 58분 마산에
오전 8시 54분 오전 8시 45분 봉천, 경성, 부산 방면에
오전 11시50분 오후 12시 05분 봉천, 경성, 부산 방면에서
오후 2시 05분 오후 1시 55분 내지, 부산, 대구 방면에
오후 2시 50분 오후 2시 59분 내지, 부산, 대구 방면에서
오후 6시 24분 오후 6시 09분 봉천, 부산 방면에
오후 7시 15분 오후 7시 23분 대구, 부산 방면에서
오후 10시 18분 오후 9시 09분  

 

본선에는 원북 평촌 사이에 연장 2천 피트의 소어석(小魚石) 터널과 이천 갈촌 사이에 연장 429피트의 장곡(長谷) 터널 같이 하천을 끼고 가는 와하(臥河) 터널이 있으며, 남문산과 개양 사이에는 연장 792 피트의 산고개를 봉쇄한 쇄치(鎖峙) 터널이 있으며 다리로 가설된 길고 큰 철교는 없다.<<<

 

이 글은 창원시정연구원이 2021년에 번역한 『馬山港誌』(1926) 중 68번 째 것이다. 그림은 별도로 삽입하였다. 『馬山港誌』는 일제강점기에 발간된 일본 문헌 중 가장 가치가 높은 책으로 평가 받고 있다. 저자는 앞서 게재한 『馬山繁昌記』와 같은 스와 시로(諏方史郞)이다. 본 포스팅은 비영리를 전제로 창원시정연구원의 양해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