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영화, 만화, 잡지
초등학교 6학년 때 단체로 시민극장에 ‘성웅 이순신’을 보러 갔다가 실망했던 기억이 있다. 활동사진이 아니고 정지된 그림(슬라이드)이었기 때문이다.
중1때 문화동 쯤에 있었던 제일극장에서 본 애정(哀情)이란 영화에서도 큰 흥미는 못 느꼈었다. 영국 명우 ‘로렌스 올리비에’ 감독·주연의 명화였으나 선생님들은 좋았겠지만 중1짜리들이 즐길 수 있는 영화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영화에 대한 흥미와 관심을 폭발시킨 영화는 중2 때 본 ‘셰인(SHANE)’이었다.
「부림동에 있는 국제극장(1948년 부림극장으로 개관했다가 1950년 국제극장, 1956년 강남극장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2004년 폐관하였고 2008년 건물도 헐려 지금은 오피스텔이 들어서있다)에서 본 그 영화는 그 후 한참동안 그 감동에 필적할 만한 영화가 나오지 않아 거의 독점적으로 회자되었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우리들의 머릿속에 깊이 새겨져 있을 것이다.
미남스타 ‘알랜 래드’의 고독한 영상(특히 말을 타고 가는 장면에서 극장 안에 울려 퍼진 주제음악과 어우러져), 그러면서도 악당에겐 강한 주먹을 날리는 의협심, 특히 아역 배우의 다급한 외침에 돌아가면서 악당 두목 ‘잭 팰랜스’를 단 번에 쓰러뜨리는 극적인 장면 등은 몇 년을 두고 우리들의 화젯거리 1호였다.
권총 발사 시 왼손을 오른손에 든 권총 노리쇠 부분으로 가져가면서 쏘는 흉내를 우리들이 경연할 정도였고, 극중의 어린아이가 ‘셰인’하고 정겹게 부르는 음성 흉내도 역시 그 대상이 되곤 했다.
그 이후로 ‘서부활극’은 청소년 선호 오락물 1위였다. 그래서 그것이 우리들 생활상에 준 영향도 컸으니, 그것 때문에 부모들에 대한 거짓말 횟수들이 늘었고, 심지어 영화 단체관람이 예고된 후부터 관람까지의 4~5일 동안 부모들에게 ‘관람투쟁’을 벌이는 친구들도 있었다.
그리고 그 서부극들 때문에 우리들의 장난 유형이나 싸움 패턴이 달라졌다.
그전엔 대체로 싸움이 시작되면 도리깨질하듯 팔을 원형으로 휘두르다가 몸이 맞닿으면 잡고 쓰러뜨리고, 그래서 위에 올라탄 사람이 대체로 이기게 되고.... 이런 식의 싸움이었는데, 이 영화들 이후 언제부터인지 주먹을 직선으로 내지르는 것이 일반화되었고, 심지어 어느 쪽이 쓰러지면 옆에 있던 입회인 친구들이 일으켜 세워 다시 시작하게 하는....
이렇게 영화 붐이 일자 학생들은 학교에서 관람을 허용하지 않는 영화까지 정학당할 위험도 무릅쓰면서 소위 ‘도독구경’을 하기도 했다.
그러다 들키면 다음날 교문 앞 게시판에 학년, 반, 번호, 이름이 명기된 유기정학 혹은 무기정학(유기정학 3회 이상) 공고가 나붙고.... 그런 중독을 더 부추기는 것은 매일 한낮이 가까워오면 극장 지붕 위에 설치된 대형 스피커에서 울려오는 호객용 유행가소리.... 특히 날씨가 더워져 교실 창문을 열어 놓았을 땐 그 소리에 반해 고개는 선생님 쪽으로 향하고 있어도 발은 그 노래 장단에 맞추고 있어....」 (이상 『상식의 서식처』에서)
중·고등학교 시절 우리들 화제의 중심엔 알랜 래드, 빅터 마추어, 로버트 테일러, 엘리자베스 테일러, 게리 쿠퍼, 룩 허드슨, 제인스 딘 등이 오르내리는 일이 참 많았다. 그러니 서부 사나이들이 정의의 사도로 인식되는 일도 자연스러웠다.
내 중학교 때부터 만화도 붐을 일으켰었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밀림의 왕자’다.
아프리카 상공을 지나던 비행기가 추락하면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아 흑인 부족들 손에서 길러진 한국소년 철민과 미국소녀 케에트의 활약상을 그린 것이었는데, 한두 달에 한권씩 약 2년에 걸쳐 나온 그것은 그 어간에 나온 것으로 기억되는 타잔, 킹콩 시리즈들과 더불어 이국정취를 자극하기에 충분했었다.
철민과 케에트 둘을 아끼고 보호하는 추장 ‘제가’, 추장 자리를 탐내어 둘까지 미워하는 ‘구레’, 둘의 수호천사 뱀 ‘다나’, ‘다나’와 라이벌이라 둘까지 헤치려드는 공룡(이름은 생각나지 않는다)들이 어우러져 펼치는 드라마틱한 장면들은 학생들의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특히, ‘다나’와 공룡이 혈전을 벌이다 둘 다 화산분화구로 떨어져 들어가기 직전 분화구 위쪽에 있던 큰 나뭇가지에 ‘다나’가 급히 꼬리를 뻗어 감으면서 빠져나오는 장면은 지금도 기억이 선명하다.
학생들이 많이 본 잡지로는 『학원』이 유명했었는데 특히 거기에 오랫동안 연재된 조흔파의 명랑소설 「얄개전」은 인기를 많이 끌어 생명력이 긴 유행어를 낳기도 했다.
그때는 물론이었고, 지금도 우리 나이 사람들이 많이 모인 자리에서 심심찮게 키 작은 사람보고는 ‘꺼꾸리’, 키 큰 사람에게는 ‘장다리’란 말을 붙이는 일이 있는데, 그 말들은 「얄개전」의 두 주인공 남학생의 별명이었다.
박호철 / 창원미래연구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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