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지난 6월 2일 건축사신문에 게재된 것이다.
부활절이었던 지난 3월 31일,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킹스칼리지 채플의 옥상에 태양광 패널을 덮는 공사가 준공되었다. 뉴욕타임스, 블룸버그통신 등 세계적인 언론들이 이 사실을 보도하면서 알려졌다. 500년 역사의 이 성당을 덮은 태양광 패널은 모두 438개였다. 이 성당은 16세기 영국의 절대군주 헨리8세 때 지은 최고의 건축물이다. 당시대 유럽의 최고건축이라 해서 ‘고딕의 꽃’이라고도 불린다. 매년 크리스마스이브에 BBC가 케임브리지 킹스칼리지 합창단 공연을 현지 생방송하는 곳으로 유명하다. 놀라운 일이다. 우리로 치면 경복궁 지붕을 태양광 패널로 덮었다는 말이다. 미관을 해친다는 우려가 없지도 않았다. 하지만 영국 국교회(성공회)는 2020년에 선언한 '2030년 탄소중립'의 원칙에 따른 이 파격적인 시도를 전국의 1만6천여 개 성당에 계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영국 성공회가 체스터대성당 옥상에 설치한 태양광 패널
2020년 1월 과학저널 바이오사이언스는 전 세계 11,000명 이상의 과학자가 ‘기후 위기가 도래했다’면서 ‘기후 위기로 인한 막대한 고통을 피하기 위해서는 생물권을 보존하기 위한 노력의 규모를 엄청나게 늘릴 필요가 있다’는 주장을 상세히 게재했다. 코로나19 팬데믹의 원인도 인간의 탐욕이 낳은 기후변화 때문이라는 결론이 나왔다.
말로만 듣던 기후변화가 생활주변까지 쳐들어왔다. 한 개 만원이 넘는다는 사과 값이 그 반증이다. 서울의 한 백화점에서는 사과 한 개를 19,800원에도 팔았다. 이러다가 쌀 한 되에 10만 원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대형산불, 폭우, 폭염, 홍수, 혹한도 기후변화 영향이다. 특히 산불은 점점 대형화되고 잦아졌다. 지난여름 캐나다에서는 1천여 건의 산불이 발생했고 그중 절반은 진화를 포기했을 정도였다. 이미 멸종된 생물도 많지만 멸종위기생물도 수없이 많다. 어느 노래가사처럼 ‘물고기 없는 강’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 급기야 인간도 멸종위기종이라는 주장까지 나왔다.
기후변화에는 건축 책임이 크다. 에덴 프로젝트로 유명한 영국의 친환경 하이테크 건축가 니콜라스 그림쇼는 ‘가장 파괴적인 일은 건물을 허물고, 허물어진 자재를 모두 치우고, 그 자리에 다시 새 건물을 짓는 것’이라고 했다. 한국의 재개발 재건축에 딱 들어맞는 말이다.
인간이 흔히 사용하는 물질 중 자연환경에 가장 유해한 것이 콘크리트다. 지구 생태계를 파괴해야만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인류가 최근 20년간 사용한 콘크리트는 그 이전까지 사용한 총량보다 더 많은 양이었다. 중국은 미국이 지난 백년 간 사용한 콘크리트의 양보다 더 많은 양의 콘크리트를 매 3년마다 사용하고 있다. 인도네시아의 모래가 최근 20년간 콘크리트용으로 팔려나가는 동안 섬 24개가 지도에서 사라졌다. 그 모래는 대부분 싱가포르, 중국, 일본, 한국으로 팔려나갔다. 한 연구에 따르면 콘크리트 사용량은 20층 건물 한 동이 10층 건물 두 동보다 40%나 많았다. 10층을 초과하면 콘크리트 양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건축사들은 고층건물을 향한 현대건축의 기술주의를 이상적 모델로 생각하고 있다.
근대 이전의 전통건축은 자연에 순응하는 친환경적 건축이었다. 한국의 전통건축이 특히 더 그랬다. 하버드대학 교수이자 건축사상가인 세라 W. 골드헤이건은 ‘인간의 유전자는 자연과 밀접할수록 행복한 삶이라고 여긴다.’면서 ‘그것은 도시 사람이든 시골 사람이든, 어떤 환경에 살든, 어떤 민족이든 간에 누구나 가진 동일한 특성이다.’라고 했다. 맞는 말이다. 인간은 원초적으로 자연과 한 몸이어서 건축도 자연에 순응하는 것을 제일의 가치로 두었다. 하지만 근대 이후의 건축은 자연보다 기술에 의존하였다. 근대산업사회는 인간의 과학기술을 앞세워 자연환경을 훼손해왔으며 건축도 그 흐름 안에서 발전하였다. 그것은 지속되지 못할, 끝내 멈출 수밖에 없는 발전이었지만 별 고민이 없었다. 자연과 사람의 관계를 재조정하지 않으면 생태계 파멸을 피할 수 없다는 지구적 경고가 있었지만 대부분의 현대건축은 그것을 외면했다.
눈앞에 다가선 자연변화의 여러 정황들은 건축사에게 기후변화 대응의지를 요구하고 있다. 비록 몸과 손은 개별건물에 머물 수밖에 없지만, 생각은 지구적으로 하라는 요구이기도 하다. 수도 코펜하겐이 세계 최초로 ‘탄소중립도시’를 선언했던 덴마크는 이미 전체 전력 생산량 중 재생에너지의 비율이 70%를 넘어섰다. 2030년 100%를 목표로 하고 있다. 세계 최초의 생태산업단지 오백년 채플을 덮은 태양광 패널 도 그 노력의 결과다. 친환경건축으로 세계적 명성을 얻은 건축가들이 유독 덴마크에 많은 것도 이런 흐름의 결과다.
기후변화 대응은 오늘의 건축사에게 주어진 시대적 소명이다. 현재의 눈으로만 현실을 보지 말고 먼 미래의 눈으로 현실을 보아야 한다. 결코 미루거나 돌아갈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주어진 자리에서, 맡겨진 일에서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해야 한다. ‘하고 싶은 건축을 하는 건축사’ 보다 ‘해야 할 건축을 하는 건축사’가 더 필요한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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